문 대통령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첫날 ‘한·아세안 문화혁신포럼’에 참석해 “문화콘텐츠는 가장 유망한 산업”이라며 “아세안과 협력해 글로벌 문화시장 진출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또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리는 부산이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인 점을 고려해 “한국과 아세안이 세계 스마트시티를 선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개별적인 사업도 중요하지만 보다 많은 국가를 끌어들이려면 신남방정책과 4차 산업혁명을 연계할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과제는 이런 구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역내 공동의 인프라 구축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인프라를 꼽는다면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인공지능(AI)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빅데이터일 것이다. 한·아세안에 일본까지 끌어들이면 3각 빅데이터 네트워크 구축도 가능하다.
한·아세안을 넘어 한·일·아세안 빅데이터 네트워크로 가면 유리한 점이 많다. AI 알고리즘 등 플랫폼을 주도하는 미국과 거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빅데이터 파워를 내세우는 중국의 패권 다툼 속에서 한국·일본·아세안이 따로 놀면 각개격파를 당하기 쉽다. 하지만 서로 손을 잡으면 미국과 중국이 무시할 수 없는, 9억 명에 이르는 빅데이터 블록이 가능해 또 하나의 글로벌 AI 축을 형성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의 네이버와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메신저 앱 ‘라인’과 일본 최대 검색엔진 ‘야후재팬’의 경영 통합을 선언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 아세안의 이용자들을 통합하면 미국의 이른바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와 중국의 BATH(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화웨이)에 맞설 수 있다는 데 양사의 이해가 일치했을 것이다. 한·일·아세안 빅데이터 네트워크가 구축되면 역내 기업들 간에 비슷한 동맹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아세안은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글로벌 생산기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데다 거대한 소비시장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세계 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인 아세안과 연대하면 글로벌 가치사슬상의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실험하는 데도 훨씬 유리하다. AI 분야에서 현재는 미국과 중국에 뒤지고 있지만 한·일·아세안이 합치면 AI를 활용하는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 있고, 미·중에 대항할 독자적인 플랫폼 개발도 노려볼 만하다.
한·일·아세안 빅데이터 구축은 한국과 수출 규제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일본을 끌어들이는 데도 더 없이 좋은 명분이 될 수 있다. 한국이 한·일·아세안 빅데이터 구축의 이니셔티브를 쥔다면 외교적·경제적 입지도 크게 넓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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