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이후 7000여억 손실 보고도…한전 주가 급락엔 침묵하는 국민연금

입력 2019-11-26 17:19   수정 2019-11-2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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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10일 주당 4만3150원에 달했던 한국전력 주가는 26일 현재 2만7800원으로 떨어졌다. 약 2년 반 새 36% 급락했다. 한전이 정부 탈원전 정책에 맞춰 제조원가가 낮은 원전을 줄이는 대신 값비싼 액화천연가스(LNG), 신재생에너지 등의 비중을 늘려 대규모 적자를 낸 게 주된 원인이다. 여기에 여름철 주택용 전기요금 인하 등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 수단으로 한전이 동원되면서 주가 낙폭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국민연금은 산업은행과 정부에 이어 한전의 3대 주주(지난 9월 말 기준 지분율 7.18%)다. 한전 주가 급락으로 당연히 국민연금도 큰 손실을 봤다. 2017년 3월 말 1조9372억원에 달했던 국민연금의 한전 주식 평가액은 지난 9월 말 1조1930억원으로 7500억원 가까이 하락했다. 같은 기간 국민연금의 한전 보유 주식 수가 4170만여 주(지분율 6.50%)에서 4606만여 주(7.18%)로 430만여 주(약 1200억원) 늘었음에도 전체 평가액이 38% 쪼그라들었다.

주가 하락으로 손실을 본 한전 소액주주들은 “탈원전 정책을 그만두라”는 시위에 나서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전기요금 인하에 대응해 김종갑 한전 사장 등 한전 이사진을 배임혐의로 고발도 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국민 노후 자금 수천억원이 허공에 사라졌지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주주가치 훼손을 막기 위해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한전 이사 선임을 반대하는 의결권 행사를 한 적도 없다. 오히려 국민연금은 작년 8월 한전 임시주총에서 기업 경영 참여 경력이 전혀 없는 ‘친문(친문재인) 낙하산 인사’의 이사 선임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ISS 등 국제 의결권 자문사 권고까지 거스른 결정이었다.

공기업과 대조적으로 국민연금은 사기업에는 적극적으로 의결권 행사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이사 연임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국민연금 내부에서도 배임 및 횡령 혐의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아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나왔지만 조 회장에 대한 검찰 기소 단계에서 이사 선임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는 강수를 뒀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 사장은 “국민연금이 권력에는 침묵하고 사기업에는 적극적으로 경영 개입을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면서 스스로 의결권 행사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시키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국민연금은 권력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직 국민의 노후 자산을 관리하는 수탁자로서 모든 기업에 같은 잣대로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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