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연의 데스크 시각] 치킨게임에 빠진 한국

입력 2019-11-27 18:26   수정 2019-11-28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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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대의 차량이 마주보며 달린다. 충돌하면 두 운전자 모두 죽는다. 최악의 결과다. 둘 중 하나만 옆으로 피하면 그 운전자가 패자가 된다. 핸들을 유지한 운전자는 승자다. 직진한 운전자에겐 최선, 피한 운전자에겐 차악(次惡)의 결과다. 두 운전자 모두 피하면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무승부로 차선(次善)의 결과가 된다.

게임이론의 하나인 ‘치킨게임’ 구도다. 치킨게임은 어떤 문제를 놓고 대립하는 두 집단이 있을 때 양보하면 상대방에 비해 손해를 보게 되지만, 양쪽 모두 양보하지 않으면 최악의 결과가 벌어지는 상황을 전제한다. 양쪽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면 차선이지만 최대 이익을 만들어내는 행동, 즉 둘 다 핸들을 돌려 충돌을 피하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소위 ‘내시(Nash) 균형점’이다.

곳곳에서 판치는 치킨게임

게임이론은 쌍방이 합리적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쌍방이나 일방이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공멸의 결과를 초래하는 사례도 많다. 때로는 나홀로 승자가 되기 위해 눈을 가리거나 핸들을 고정시키기도 한다. 자신은 절대 피하지 않을 것이란 비합리성을 과시하면 파국이 두려운 상대가 먼저 피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벼랑 끝 전술을 쓰는 북한의 행태가 대표적이다.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을 놓고 벌인 한·일 간 신경전은 치킨게임의 전형이다. 한국과 일본 정부 모두 “상대국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결정을 바꾸지 않겠다”며 협정 종료를 향한 외길 수순을 달렸다. 종료를 하루 앞둔 지난 22일 유예로 선회해 정면충돌을 피한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유예 결정 이후 누가 먼저 핸들을 꺾은 패자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조건부 연장이란 단서가 달린 데다 연장 합의의 경위를 놓고 한·일 간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만큼 ‘일단 정지’로 보는 게 맞다.

치킨게임은 정치·외교·안보·경제 등 분야를 망라해 한국의 주력적인 게임 전략이 되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두고 전국이 진보와 보수로 갈려 파국의 치킨게임을 벌였다. 혁신 플랫폼을 표방한 타다와 택시업계의 갈등도 극단적 치킨게임 양상이다. 노사 갈등은 한국 치킨게임의 고전이자 고질이다. 산업 현장 곳곳에서도 막장 게임이 빈번하다.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이기와 극단이 판친다.

제로섬을 포지티브섬으로

정부와 정치권의 무능한 행태가 한국 사회를 분열과 극단적 대립의 치킨게임으로 몰아가는 주범이다. 심지어 갈등을 중재해야 할 정부가 치킨게임 상황을 조장하거나 심지어 퇴로 없는 직진을 선언한 채 직접 게임 플레이어로 뛰어들기도 한다. 극한 대립을 통해 일방이 치킨게임의 승자가 되는 과정에서 국가 전체 이익은 훼손되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간다.

치킨게임은 승자의 이득과 패자의 손실 합이 ‘0’이 되는 제로섬(zero sum) 환경을 기반으로 한다. 성장이 멈춘 제로섬 사회에서 한쪽의 이득은 반드시 누군가의 손해로 돌아온다. 따라서 계층 간, 지역 간, 노사 간, 세대 간 갈등이 한꺼번에 분출된다. 극단적 대립 속에 분열과 갈등이 폭발한다. 최근 한국 사회 전체가 치킨게임으로 빨려들어가는 배경이다.

타협 없는 게임의 종말은 파국이다. 각자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상호 협력을 통해 이익의 합을 키우는 ‘포지티브섬(positive sum)’으로 게임 환경을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 중요한 건 중단 없는 성장이다.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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