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 배지' 최악 日여성 인권에도 性격차순위 韓보다 높은 이유 왜?

입력 2019-11-30 08:42  


'세쿠하라(セクハラ)'

직장 내 성희롱이 얼마나 만연한 지 영어로 성희롱(sexual harassment)의 줄임말 '세쿠하라'는 일본에선 하나의 일반 명사처럼 자리 잡았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2016년 발표한 '성희롱에 관한 실태조사'서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3명 중 1명꼴이었다. 문제는 이처럼 여성 인권이 심각히 낮아 보이는 일본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성(性) 격차 보고서 순위에서 한국보다 높은 등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왜일까? 전문가에 따르면 일본은 여성 인권은 낮지만, 관련 제도들이 잘 받쳐주고 있고 일본 여성들 역시 불합리함을 느끼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다.

실제로 일본 여성 인권은 상상 이상으로 낮다. 일본 내 한 백화점 매장에서 여직원들이 생리 중임을 알리도록 한 이른바 '생리 배지'를 부착한다거나, 한 방송에선 도쿄올림픽이 열릴 때 쓰레기 대책으로 여성 자원봉사자들에게 게이샤 분장을 시킨 뒤 쓰레기통을 매고 다니며 '인간 쓰레기통'을 만들자는 등 제안을 했다. 일부러 특이한 사건들만 모은 게 아니다. 모두 올해 11월에만 발생한 이슈들이다. 일본 여성 인권이 얼마나 낮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문가에 따르면 여성 인권은 낮지마는 일본은 여성의 사회 진출과 관련된 제도들은 잘 뒷받침돼있다. 1985년 공표한 '남녀고용기회 균등법'을 기점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이 증가한 일본은 2015년에는 '여성활약추진법안'을 공표하고 2019년 6월에는 해당 개정안을 시행시켰다.

단순히 고용 평등뿐만 아니라 일과 육아의 병행을 가능케 하는 지원법률 역시 잘 돼있다. 실제로 2000년 전후로 결혼 및 출산 후에도 장기 근무를 하는 여성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일본 정부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여성 고용촉진안도 도입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은 '양립지원 등의 조성금'의 지원 등 인구감소 고령화 시대 대응책으로써 여성 고용촉진을 위해 지렛대 역할을 할 방안을 지속해서 마련할 전망이다.

그래서인지 일본 여성들은 사회적 권리 증진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여성에게 불합리하게 적용되는 제도들을 고치자는 움직임들이 크게 일고 있다. 올 초 일본에선 배우 겸 작가인 이시카위 유미가 직장 내 '하이힐 착용 강요'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며 '구투'(ku too) 서명운동이 촉발됐다. '구투'는 신발을 뜻하는 일본어 구쓰와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을 결합해 만든 조어다.

최근에는 일본의 한 직장 내에서 여성 직원에 한정해 안경 착용이 금지된다는 사내 규정이 개설되자 이에 반발한 여성 직원들이 비판의 글을 게시하며 온라인 내에서 항의 시위가 시작되기도 했다. 여성에 대해 적용되는 엄한 규정을 비판하는 온라인 시위는 '안경 착용 금지'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우후죽순으로 퍼졌다. 이에 도이 가나에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일본 지부장은 "여성에게만 안경 착용을 금지하는 규정은 여성 차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여성 인권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해도 막상 사회에선 관련 제도들은 부족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지난 4월8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19 유리천장 지수'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OECD 29개 회원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유리천장 지수는 여성의 교육, 경제활동, 참여, 임금 등 노동환경을 종합적으로 매긴 점수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데도 이를 개선하자는 '페미니즘'에 대한 주위의 시선 역시도 따갑다는 것이다. 미국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지난 5일 한국 여성들이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상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표적이 되는 우려스러운 추세가 나타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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