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한-아세안 CEO 서밋’ 참석차 부산을 찾았던 짐 로저스는 이틀간 베이징에서 머문 후 28일 서울을 찾았다. 다음날 다시 중국으로 떠났다. 그는 2007년 미국 뉴욕에서 싱가포르로 집을 옮겼다. 아시아 각국을 마치 지방도시 가듯하는 그는 책상이 아니라 현장에서 투자의 답을 찾았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도 “MBA를 선택하는 것은 시간과 돈 낭비”라며 “차라리 세계를 여행하고 현장에서 일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최근 <앞으로 5년 한반도 투자 시나리오>(비즈니스북스)를 출간했다. 한국어로 펴낸 첫 책이다. 잠깐 서울에 들른 그를 여의도 한 호텔에서 만났다. 청바지에 핑크색 스웨터를 받쳐 입은 그는 한글로 ‘짐 로저스’라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누구보다 먼저 중국의 부상을 예측하고 투자해온 그는 “한반도를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한반도에서의 변화가 향후 10~20년간 세계 투자 지형을 뒤흔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거듭 반복해 말하는 ‘한반도’라는 발음은 꽤 정확했다.
▷한국어 책을 낸 이유는 무엇입니까.
“38선이 무너지면 한반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이 될 것입니다. 한국의 미래를 비관해 나라를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지만 그들은 다시 돌아와야 할 겁니다. 북한은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 한국은 자본과 기술을 가졌죠. 한반도를 둘러싸고 앞으로 일어날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38선이 무너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한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경제가 열리는 거죠. 한국도 북한에 문을 열어야 합니다. 인적, 경제적 자원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북한은 개방을 위해 오래 노력해왔죠. 하지만 미국은 그걸 원하지 않습니다. 중국 국경을 두고 미군을 주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곳이 한반도니까요.”
▷북한의 경제개방 혹은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5~10년 내에 현실화될 것이라 예상하는 건지요.
“시기는 더 빨라질 수 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사람이지만 스위스에서 자랐죠. 그는 북한을 ‘덩샤오핑의 중국’으로 만들고 싶다고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할아버지, 아버지와 같지 않고 그 사이 세상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책에서 ‘북한’이라는 카드가 없다면 한국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은 출산율이 낮고 자살률은 높습니다. 젊은이들의 꿈은 공무원이고 부채는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건강하고 경제가 역동적이라고 보긴 어렵죠. 이민자를 원치 않고 규제도 심한 편입니다. 경제가 닫혀 있는 겁니다. K팝이 세계적으로 인기지만 더 큰 요인이 있어야 합니다. ‘38선 붕괴’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습니다. 방위비가 절감되는 효과도 크죠. 많은 곳에서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고 세계 경제 침체기를 맞아도 다른 나라들보다 충격을 덜 받을 겁니다.”
▷2014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 관리들이 찾아와서 투자를 권했다고요.
“당시 북한은 해외 자본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었습니다. ‘원하는 것은 다 된다’며 매력적인 인센티브도 제시했죠. 투자자라면 쉽게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었습니다. 당시 의류공장 사장을 만났고 수산 양식업장도 둘러봤습니다. 하지만 경제제재 때문에 투자는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미국인이니까요. 미국은 자유의 땅이지만 미국인은 자유롭지 않은 셈이죠.”
▷한반도 경제통합 후 인프라, 자원, 관광 등을 유망 분야로 꼽았습니다.
“아시아로 여행을 간다고 누가 한국을 떠올릴까요. 일본이나 중국, 발리 같은 곳이겠죠. 하지만 38선이 무너지면 어떨까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궁금해 할 겁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 쏟아진 관심을 떠올려 보세요. 일단 와보면 멋진 자연경관에 반하고 한식도 유행할 거에요. 다음에 두 지도자가 만날 땐 38선에서 K팝 콘서트를 무료로 열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게 말입니다. 동계올림픽보다 훨씬 작은 비용으로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을테니까요. 특히 철도 연결 사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철도가 중국과 러시아로 이어지면 한국은 세계의 교통 허브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
▷한국의 상장사인 나노메딕스(사내이사)와 아난티(사외이사)의 이사이기도 합니다. 투자활동의 일환인가요.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북한 투자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 역시 그 연구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두 회사에 투자한 자금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관련돼 있죠. 아난티는 북한에 리조트를 갖고 있습니다. 변화가 시작되고 관광산업의 붐이 일면 큰 성과가 있을 겁니다. 한국은 그래핀 기술 선두주자고 북한은 원료가 되는 광물을 보유하고 있죠. 그에 따른 시너지 효과로 그래핀에 대한 전망을 밝게 보고 있습니다.”
▷책에서 2020년 세계경제에 큰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위기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구석에서부터 시작되죠. 라트비아, 터키, 인도, 인도네시아 등의 부채 증가로 그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의 팽창은 역사상 가장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위기가 오면 그만큼 충격도 더 클 것입니다. 2007년 아이슬란드의 파산처럼 어떤 것이 트리거(방아쇠)가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이미 시작됐을지도 모릅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 기관들은 ‘올해가 바닥’이라며 내년엔 좋아질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는데요.
“IMF의 예측은 맞은 적이 없습니다. 그곳에서 낸 연간보고서를 보면 ‘매년 이렇게 틀렸구나’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권위있는 기관이지만 틀린다고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도 비난받지 않죠. IMF서 그렇게 발표했다니, 내 전망에 더 확신이 드는군요.”
▷현 시점에서 어떤 투자전략을 짜야 할까요.
“나는 농산물, 그리고 금과 은에 투자했습니다. 경기가 안 좋을 때 금에 투자하는 게 맞냐고 하면 경제학과 교수들은 아니라고 하죠. 하지만 사람들은 겁을 먹으면 앞다퉈 금과 은을 사려고 합니다. 그래서 투자하는 거에요. 농업 쪽은 수십년간 상황이 안 좋았죠. 그렇게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에 투자의 기회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의 말을 듣지 말라’는 겁니다. 신중하게, 자신이 잘 아는 것에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경제신문을 열심히 읽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죠.”
▷국가별로는 어떤 곳을 유망시장으로 꼽습니까.
“어제도 한 러시아 기업의 주식을 좀 샀습니다. 러시아는 정부의 경제개발 의지가 크고 재정도 안정적입니다. 정치·경제적으로 불안한 베네수엘라와 짐바브웨도 좋은 투자처입니다. 한때 관심이 높았던 일본 주식은 전량 매도했습니다. 생산 인구는 줄고 폐쇄적인 체제에 국가 부채는 너무 많아서입니다. 미국은 역사적 고점을 찍고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힘든 시기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지난 30년간 좋은 성과를 내 왔습니다. 다만 이젠 그 속도가 줄고 있는 것뿐이죠. 부채를 줄이려면 상환이 우선이니 경기는 둔화될 겁니다. 하지만 19세기를 주름잡았던 영국, 20세기를 제패한 미국도 위기는 겪었습니다. 침체는 겪겠지만 중국이 21세기에 가장 성공한 국가가 될 것임은 명백합니다. 위기는 곧 기회죠.”
▷미국과 중국간 무역전쟁은 어떻게 결론이 날 것이라고 예상합니까.
“조만간 양국에서 사람들이 듣기 좋은 소식을 발표할 겁니다. 그 소식 덕에 한동안은 괜찮겠구나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다음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더 심각한 무역전쟁을 선포할 겁니다. 트럼프는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듯해요. 역사는 그 반대를 가리키고 있는데 말입니다. 미국 경제에 문제가 생기면 트럼프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 독일 등을 문제의 원흉으로 지목할 겁니다. 더 많은 전쟁을 일으키겠죠. 무역전쟁은 누구에게도 안 좋은 겁니다. 큰 문제가 될 거에요. 역사는 그것을 얘기해주고 있지만 역사를 읽고 신경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부는 곧 ‘자유’라고 했습니다. 일찌감치 자유를 얻었음에도 계속 투자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유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자동차나 비행기, 집이나 요트를 사는 자유가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투자에요. 매일 아침 일어나면 밤새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돈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파악합니다. 그게 재밌습니다. 투자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입니다.”
윤정현/강영연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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