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우의 데스크 시각] 관광 부국, 실용주의가 답이다

입력 2019-12-01 17:40   수정 2019-12-02 00:33

“분노가 치밉니다. 이게 나라입니까?”

설악산 오색삭도(索道:케이블카) 개발 사업을 지지해온 현지 주민의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다. 환경청이 “생태계 파괴 우려 등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부동의’ 결정을 내린 지 석 달여. 어느 정도 후폭풍이 가라앉았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그는 “이민을 가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지가 눈앞이던 40년 지역 숙원사업이 패닉에 빠졌다. 이 사업을 ‘벤치마크’하던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기둥 6개를 헬기로 시공해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겠다는 대안, 산양 서식지 등 생태계는 충분히 복원될 수 있다는 전문가 평가 등이 주목받았던 게 엊그저께다. 등산이 힘든 노약자, 장애인 등 관광 약자들이 키웠던 기대는 정권이 바뀌자 물거품이 됐다. 정준화 친환경 오색삭도 추진위원장은 “정치적 결정이 아니고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행정소송 등 진짜 갈등은 이제부터다.

좌절한 40년 지역 숙원 사업

‘적폐청산 프레임’은 종종 다른 적폐를 낳는다. 케이블카가 환경파괴 주범이라면 스위스, 이탈리아, 일본 등 관광 선진국은 왜 케이블카 천국이 됐을까. 2500여 개의 케이블카가 있는 스위스는 연간 약 3200만 명(2017년 기준)의 국내외 관광객을 받아 13억5000만스위스프랑(약 1조6000억원)을 벌어들인다. 그럼에도 누구도 스위스를 환경파괴 국가로 비난하지 않는다. 옳고 그르냐의 ‘일도양단’보다 개발과 보존 간 균형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고심해온 결과로 평가한다.

이런 실용주의를 더 화끈하게 밀어붙인 게 일본이다. 얄밉도록 실용의 길을 걸었다. 관광정책만큼은 지난 정권의 것까지 계승했다. 2003년 자민당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관광입국’을 선언한 뒤 2009년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뒤를 이었고, 2012년 아베 신조 총리가 물려받았다. 지난해 일본은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복합리조트 특별법까지 통과시켰다. 2020 도쿄올림픽과 2025년 오사카 세계박람회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온 나라를 도박국가로 만들 것이냐”는 일침에 일자리 25만 개 창출 목소리까지 묻혀버린 우리와는 달랐다.

'유니크 코리아' 창조가 경쟁력

우리보다 한 발 더 빨리 빗장을 푼 외국은 돈방석에 앉았다. 2010년 ‘마리나베이샌즈’와 ‘리조트월드 센토사’를 개장한 싱가포르는 4년 만에 관광객 수와 관광수입이 두 배로 늘었다. 우리의 잠재적 경쟁자인 대만, 필리핀, 베트남 등도 이 길을 따라 걷고 있다.

한국만 뒷걸음이다. ‘삭도’ 같은 관광쪽만이 아니다. ‘절대악’이란 이유로 파헤쳐진 4대강 사업이 그랬고, 원전(原電)이 그랬으며, 한식 세계화가 적폐 꼬리표와 함께 쓸려나갔다. 일자리 창출은커녕 있던 밥그릇까지 걷어찼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관광업계 원로는 “우리 운명이 백척간두인데 북한 정권에 농락당한 금강산 관광 복원에 행정력을 쏟는 정부를 보면 도대체 제정신인지 묻고 싶다”며 혀를 찼다.

외국인 관광객 10명이 중형 자동차 한 대를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 경제적 효과를 창출한다. 우리는 물려받은 자연유산도, 문화유적도 부족하다. 멋진 루브르박물관도, 황홀한 나이아가라 폭포도 없다. 그나마 젊은이들이 주도한 ‘K컬처’가 없었다면 지난 10년을 어찌 버텼을까. 한국만이 가진 매력, ‘유니크 코리아’ 창조가 그래서 살길이다. 프랑스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는 말했다. “지금 이 순간 50년 후 우리의 모습이 결정되고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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