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개발하는 ITU 표준은 안면인식, 비디오 모니터링, 도시 및 차량 감시 등에 활용된다. 표준안이 확정되면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등 개발도상국 200여국에 적용하게 된다. 중국이 ‘일대일로’ 정책에 따라 기술 인프라 핵심 시장으로 삼는 곳이다. 일대일로는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21세기판 실크로드를 만들겠다는 중국의 구상이다.
리차드 윙필드 글로벌파트너스디지털 법률 담당자는 “아프리카 국가들은 개별적으로 기술 인프라를 개발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과 ITU의 표준을 따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유럽과 북미는 자국 기업들이 참가하는 국제인터넷표준화기구(IETF), 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 3GPP 등의 기구가 있다. 반면 ITU는 유럽, 북미 외 지역의 기업이 주도해 기술 개발 표준을 정한다.
지난 몇년 동안 중국의 감시 기술 인프라는 아프리카 앙골라부터 짐바브웨까지 파고들었다. 예컨대 올 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보안 시스템업체 뷰마캠은 중국 하이크비전이 공급한 안면인식 폐쇄회로(CC)TV 1만5000대를 요하네스버그에 설치했다. 우간다는 지난 8월 안면인식 기능을 갖춘 중국 화웨이 감시 카메라를 우간다 전역에 설치하겠다고 나섰다. 싱가포르 정부도 중국 스타트업 이투와 손잡고 감시 카메라를 가로등에 설치할 계획이다.
ITU 표준은 초안 작성부터 채택까지 2년 정도 걸린다. 최종 승인 전 회원국 대표들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논의된다.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스티븐 펠드스타인 연구원은 ‘인공지능(AI) 감시의 글로벌 확대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많은 중국 기업들이 감시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을 장악하고 있다”며 “이는 중국 정부가 AI 부문을 확장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투자를 확대한 것이고, 우리는 그 결실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안면인식 ITU 표준이 중국이 AI 분야 리더십을 갖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표준을 확보한다는 건 새로운 시장에서 신기술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국의 안면인식 기술이 인권침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국이 주도하는 감시 인프라가 국제 표준으로 자리잡으면 사생활 보호와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ITU 표준이 확정되면 중국 ZTE는 다른 경쟁사들보다 AI 분야에서 크게 앞서 나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ITU 표준에 ZTE가 설계한 ‘스마트 스트리트 2.0’ 기술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ITU 표준을 적용하는 주요 개발도상국 도시에 ZTE의 시스템이 들어가게 된다는 뜻이다. 지능형 거리 조명은 보행자 자전거 자동차 등의 움직임에 따라 적절한 조명을 비추는 시스템으로, 스마트 시티를 구성하는 핵심 기술이다.
ZTE가 2017년 처음 선보인 스마트 스트리트 2.0 기술은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일상 생활에서 필요한 주차, 조명 등의 서비스를 통합 제공한다. 정부는 투명하게 수수료를 걷을 수 있다. 사람들은 실시간 데이터를 통해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게 된다. AI는 거리에서 얻은 빅데이터를 분석해 ZTE의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에 실시간으로 정보를 보낸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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