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바람이 거센 가운데 전통 제조 기업들이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국내 최대 제지 회사인 한솔제지도 디지털화로 전통 제지 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업의 본질'을 재정의하는 관점으로 새로운 산업 흐름에 발 맞추며 혁신과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한솔제지는 국내외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의 설비를 갖추고 연간 154만 톤 가량의 종이를 생산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감열지 부문은 국내 7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고, 생산량도 전세계에서 18%를 차지하며 글로벌 리더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솔제지는 고부가가치 상품성을 가진 특수지인 '감열지'에 집중하고 있다. 감열지는 제지 업계가 주목하는 첨단 소재로 전세계에서 해마다 4~5%가량 성장중인 산업이다.
관계자는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와 사용환경에 부합하는 다양한 감열지 제품을 연간 35만 톤 정도 생산하고 있다"면서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에 집중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품질을 인정받아 국내 시장은 물론 세계 전역에 다양한 종이를 수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매년 4~5% 성장하는 감열지 마켓
일반적으로 일상 생활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종이하면, A4용지 혹은 신문, 책 같은 것을 떠올리기 쉽지만 직업과 연령, 선호 매체와 상관없이 누구나 매일 접하는 종이는 다름아닌 '감열지'이다.
언뜻 낯설게 느껴지는 이름이지만 감열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물건을 사고 나서 받는 영수증이나 은행에서 ATM 기계를 이용하고 받는 명세표, 관공서에서 받는 순번 대기표, 영화관 티켓 같은 것들이 모두 감열지에 해당한다.
카드 결제가 보편화되고 포스(POS, Point of Sales) 기기의 활용이 늘어나면서 영수증용 감열지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 쇼핑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택배 라벨용 감열지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한솔제지 관계자는 "감열지는 특수 코팅 기술을 활용하여 열을 가하면 글자나 이미지가 표현되는 종이"라며 "1960년 대에는 액상 잉크를 종이에 전이하는 인쇄 방식만 있어 우주에서는 사용하기 어려웠는데, 미국 NASA가 NCR사에 우주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잉크가 필요 없는 프린터 개발을 요청하면서 개발됐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발명된 감열지는 프린터 내에 있는 TPH(Thermal Print Head)의 열에 반응하면 바로 정보를 표시하게 된다. 따라서 잉크인쇄 방식보다 인쇄 속도가 빠르고 발생하는 소음도 적다. 프린터 크기도 작아 이동이 용이하고 인쇄 비용도 저렴하다.
감열지를 포함한 특수지 분야는 부가가치가 큰 만큼 고도의 연구 개발 역량과 생산 노하우가 필요하고 기술 발전 등 환경 변화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이다. 한솔제지는 지난 2013년부터 감열지 시장의 높은 부가가치성을 미리 예측하고 생산설비를 증설하는 등 집중적인 투자를 해오고 있다.
한솔제지 관계자는 "감열지의 경쟁력은 '커튼 코팅(Curtain Coating)'이라는 핵심 기술에서 비롯한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감열지의 핵심인 열 반응 물질 사용량을 최소화하여 코팅할 수 있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원가를 절감해 판매 가격을 낮출 수 있어 내수시장에서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영수증에서 영화 티켓까지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활용
첨단 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감열지는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먼저 일반 감열지로 분류되는 저평량 감열지는 신용카드 영수증이나 은행 ATM 명세표 등 포스(POS) 분야에서 사용되는 얇은 종이로, 전체 수요의 63%를 차지한다.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바코드 라벨, 택배 배송지 정보가 포함된 라벨 용지는 특수 감열지인 중평량 감열지를 사용한다. 라벨용 감열지는 전체 감열지 수요의 27% 수준이다. 비행기 탑승권이나 영화관 티켓, 복권 등에 사용되는 티켓용 감열지는 가장 두꺼운 고평량 감열지로 약 10%의 수요를 차지한다.
최근에는 개인용 감열지 프린터 시장이 새로운 수요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017년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에서 최고혁신상을 수상한 네모닉과 같은 소형 라벨 프린터는 뛰어난 휴대성과 다양한 활용성으로 주목 받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생산성과 아날로그 메모 정서가 결합해 최근 트렌드인 뉴트로 감성을 자극한다.
한솔제지 관계자는 "종이를 다양한 산업과의 협력, 융·복합으로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소재의 하나로 보고, 종이 소재의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인쇄용지, 산업용지, 특수지로 구성된 균형 잡힌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종이 산업의 미래를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경규민 한경닷컴 기자 gyu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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