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영화 '기생충'으로 칸을 누비고, '청룡의 꽃'으로 우뚝 서며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은 배우 조여정이 브라운관으로 돌아왔다. 상류층의 삶을 그려내던 그는 이제 치열한 삶의 전장으로 떨어진다. 청룡영화상 무대에서 연기를 짝사랑해왔다고 밝힌 그는 '99억의 여자'로 또 다른 연기 도전에 나선다.
KBS2 새 수목드라마 '99억의 여자' 제작발표회가 3일 오후 서울 구로구 라마다서울신도림 호텔에서 열렸다. 현장에는 김영조 PD를 비롯해 배우 조여정, 김강우, 정웅인, 오나라, 이지훈이 참석했다.
'99억의 여자'는 우연히 현금 99억을 손에 쥔 여자가 세상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동백꽃 필 무렵' 후속으로 오는 4일 첫 방송된다.
앞서 '동백꽃 필 무렵'은 지난 21일 23.8%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이는 자체 최고는 물론, 올해 지상파 미니시리즈 최고 시청률이었다. 드라마는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서 집계한 TV드라마 화제성에서도 4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동백꽃 필 무렵'의 흥행에 부담감을 느끼지는 않는지 묻자 조여정은 "전작이 사랑을 많이 받은 건 다음 주자로서 좋은 일인 것 같다. 결이 전혀 다른 작품이라서 시청자분들이 큰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생각을 밝혔다.
드라마는 희망 없는 삶을 버텨가던 여자에게 현금 99억이라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오고, 99억을 둘러싼 인간들의 탐욕스러운 복마전 속에서 이를 지키기 위해 살아남아야 하는 여자 정서연(조여정)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극을 이끌어가는 타이틀롤을 맡은 조여정은 "나는 원래 연기하는 거 자체가 부담스럽다. 타이틀롤이 아닌 어떤 역할이라고 할지라도 내 입장에서는 항상 도전이었다. 매 순간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그 차이는 모르겠다"면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시청률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면서 사랑 받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99억의 여자'는 조여정의 브라운관 복귀작으로 주목 받고 있다. 그는 올 한해 단연 돋보이는 활약을 한 여배우다. 조여정이 출연한 영화 '기생충'은 제72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내년 2월 열리는 아카데미(오스카)시상식에서의 수상까지 점쳐지며 전 세계적 관심을 얻는 중이다. '기생충'으로 조여정은 지난달 열린 제40회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청룡영화상 무대에서 조여정은 "연기를 짝사랑해왔다"는 특별한 수상소감을 남겨 화제를 불러 모았다. 당시를 떠올린 조여정은 "데뷔를 언제 했는지를 떠나서 모든 배우들이 비슷할 것 같다. 본인 연기가 아쉬울 거다. 그런데 나는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정말 마음에 안 든다. 그래서 이게 발전해나가는 과정 아닐까 생각하며 힘겹게 해나가고 있다"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어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보다 같이 하는 감독님들, 배우분들의 능력을 받아 늘 다른 모습이 나오는 것 같다. 도전할 때 무섭긴 하지만 파트너들을 믿으면서 작품을 해 나간다. '짝사랑' 수상소감 이야기에 많은 배우분들이 공감했다고 하더라.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같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감을 샀다고 하니 좋았다"고 말했다.
조여정은 연기에 완성은 없다고 했다. 그는 "상은 힘내라고 주신 거라고 생각한다. 완성은 절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나아갈 것"이라면서 "배우는 혼자서는 불완전한 미완의 존재다. 많은 분들이 함께해서 완성될 수 있는 것 같다. 현장에서 우왕좌왕하지 않고, 이 일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체감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99억의 여자'로 연기 활동을 바로 이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 작품을 바로 결정했다. 이렇게 하고 싶은 작품을 놓치지 않고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외부에서 보기에 성공이라고 생각되는 상황에서 다음 작품의 부담을 지는 게 무서웠던 것 같다. 바로 계속 보여주면서 '나는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마음으로 부담을 덜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99억의 여자'를 선택한 이유와 캐릭터에 대해서도 직접 소개했다. 조여정은 "영화에서는 밝고, 순수하고, 어려움 없고, 허당기 있는 사모님의 역할을 소화했다. 배우들은 정반대의 캐릭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냐. 나도 이 역할이 그냥 해보고 싶었다. 이렇게까지 힘든 삶은 어떤 걸까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 여자가 당당하고 대범한 것에서 매력을 많이 느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내가 절망의 끝에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서연이를 보며 약간의 희망을 갖길 바랐다. 큰 돈을 얻는다고 내가 정신적으로 나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전하며 작은 위안을 드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조여정과 김강우는 2012년 KBS2 '해운대의 연인들' 이후 약 7년 만에 '99억의 여자'로 조우했다. 김강우는 "여정 씨가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좋았다. 언제 다시 한 번 같이 작품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과거에 정말 소녀스러웠다. 지금도 소녀스럽지만 뭔가 더 원숙해졌다. 연기할 때 막 던져도 잘 받아준다. 너무 즐겁게 촬영하고 있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극중 부부로 호흡을 맞추는 정웅인 역시 조여정을 극찬했다. 그는 "부부 호흡이 너무 좋다"면서 "이번에 (조여정 씨가) 수상도 하셨다. 다른 쟁쟁한 분들이 많아서 사실 수상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호명이 됐고, 그 순간 땀이 쫙 나면서 '앞으로 내가 여정이랑 연기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에 긴장이 되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정웅인은 "상이라는 게 상대한테도 긴장감을 주는 것 같다. 여정이는 얼굴, 손, 발 등이 정말 작다. 근데 이번에 정말 큰 배우가 됐다. 호흡을 맞추게 된 걸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여우주연상 받은 배우랑 언제 연기를 같이 해보겠느냐. 여정이 옆에 '기생충'처럼 붙어서 앞으로 한 10년간은 기생하려고 한다. 좋은 호흡, 이미지 기대해 달라. 괴롭히는 역할이지만 잘 봐달라"고 재치있게 말했다.
극중 또 다른 부부인 오나라와 이지훈은 무려 14살의 나이 차이를 넘어서고 같이 호흡하게 됐다. 오나라는 "이지훈 씨가 남편을 한다고 했을 때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현장에서 굉장히 소통이 잘 되는 커플이다. 씬이 끝날 때마다 어땠는지 서로 확인을 한다. 이지훈 씨가 '누나랑 연기해서 너무 좋다'라고 말했을 때 감동이었다. 그 이후로 지훈 씨랑 호흡이 척척 맞고 있다"라며 밝게 웃었다.
이에 이지훈도 "어릴 때부터 TV로 뵙던 선배님들이랑 연기해서 영광이었다. 나라 누나랑 부부가 됐는데 오히려 누나가 나보다 더 젊은 센스가 많았다. 현장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잘 챙겨주고 부족한 것도 이야기해준다"면서 "누나 웃음소리가 비타민 같으시다. 촬영장에서 누나 웃음 소리를 들으며 힘내서 좋은 '케미'를 내며 촬영 중이다"고 전했다.
김영조 PD는 '99억의 여자'가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드라마의 독특한 점은 남녀 주인공뿐만 아니라 5인의 삶에 대해 조명한다. 5인의 삶은 현대인의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제일 주안점을 둔 것은 돈보다는 두 부부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두 부부가 있고, 아웃사이더인 김강우가 있는데 이 사람들의 인생이 돈 때문에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시청 포인트로는 배우들의 연기를 꼽았다. 김 PD는 "명배우들이다. 대본이 추상적인 게 많아서 어렵다. 이 배우들이 아니면 어떻게 했을까 아찔한 순간들이 있다. 좋은 배우들인 만큼 각별히 신경썼다"면서 "시청자들과 배우들 사이를 친절하게 엮어주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끝으로 '99억의 여자' 팀은 자신감 넘치는 각오를 다졌다. 조여정은 "어릴 때 보던 드라마처럼 클래식한 매력이 있다고 자부한다. 12월부터 1월까지 '99억의 여자'가 흥미진진하게 해드릴 것이라 자신한다"고 말했다. 김강우 또한 "작품을 하다보면 다른 캐릭터가 욕심날 때가 가끔 있는데 '99억의 여자'는 모든 캐릭터가 그렇더라. 전부 살아있고 매력이 있다. 그 재미를 느끼시면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99억의 여자'는 오는 4일 첫 방송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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