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회담했다. 강 장관은 “서울에서 다시 만나 그간 양국 관계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성과를 평가하고 다소 미진한 부분을 개선·발전시킬 방안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왕 장관은 “세계의 안정과 평화의 가장 큰 위협은 한 국가의 일방주의가 국제질서를 파괴하고, 패권주의 행위가 국제 관계 규칙을 허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은 시종일관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평화·외교정책을 시행하며, 나라가 크든 작든 평등한 것을 강조하고 국제관계의 민주화를 주장해왔다”며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괴롭히고 자신의 힘만 믿고 약한 자를 괴롭히며 남에게 강요하는 것을 반대한다. 물론 다른 나라의 내정 간섭에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을 겨냥한 비판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어 “중국은 한국과 함께 국제법을 기초로 하는 국제질서를 수호하고 세계무역기구(WTO)를 초석으로 하는 다자무역 체제를 수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담은 예정 시간보다 1시간가량 길어져 총 150여 분 동안 이뤄졌다. 두 장관이 회담을 마치고 만찬을 하기로 예정돼 있는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왕 장관은 회담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회담이 길어진 이유에 대해 “한·중 관계는 매우 좋기 때문에 논의할 일이 많았다”고만 답했다.
화웨이 통신장비 사용, 중거리 미사일 배치 등 한·미·중 3국 간 얽힌 문제에 대해 중국이 한국에 높은 수위의 요구를 하면서 회담이 길어진 것 아니냐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은 안보상 이유로 화웨이 통신장비 사용 자제 요구와 함께 아시아 지역 내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요구가 중국 기업을 부당하게 차별하고, 중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날 회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일정을 비롯해 다음달 하순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 의제와 일정도 조율한 것으로 전해졌다. 왕 장관은 내년 초 한·중 정상회담 성사와 관련해 “우리는 이웃 국가이기 때문에 고위급 관계를 잘 발전시켜 나가려고 한다. 그래서 돌아가서 한 번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왕 장관은 5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예방하고 한·중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왕 장관 방한을 계기로 마련된 5일 오찬 행사와 관련해선 결례 논란이 일었다.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국내 학계와 정·재계 등 주요 인사에게 불과 며칠 전 오찬 행사 참석 요청을 일방적으로 통보했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은 중국대사관의 갑작스러운 오찬 초청에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4대 그룹 계열사 중 한 곳은 대외협력담당 임원들의 일정을 조정하느라 4일 오후에야 겨우 참석자를 정했다. ‘스탠딩 환담’ 등 진행 방식만 알려졌을 뿐 행사 주요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어떤 급의 임원을 보낼지 고민한 기업도 있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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