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종부세에 건보료까지…은퇴자 허리 휜다

입력 2019-12-05 17:50   수정 2019-12-06 01:41


종합부동산세 고지서를 받은 납세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정부가 헛발질로 집값을 띄워놓고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는 건 맞지 않다”는 지적이 은퇴자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시중은행 프라이빗뱅킹(PB)센터와 세무법인마다 절세 상담이 줄을 잇고 있다.

5일 각 세무서에 따르면 오는 16일 종부세 납부 마감일을 앞두고 집단반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 강남세무서 관계자는 “종부세 부담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뛰었다는 항의 전화로 업무를 보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특히 일정한 소득이 없는 은퇴자들 사이에서 “평생 살아온 집을 팔고 나가라는 말이냐”는 하소연이 많다고 했다.

주택을 팔고 싶어도 최고 62%에 달하는 양도소득세 때문에 매도하기 어렵다는 게 세무법인을 찾는 종부세 납부 의무자들의 얘기다. 올해 종부세 고지서를 받은 사람은 59만5000명으로, 작년보다 12만9000명 증가했다. 종부세액은 올해 3조3471억원으로 작년보다 58.3%(1조2323억원) 늘었다.

부동산 가격이 뛰면서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매달 수십만원의 건강보험료를 내야 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올해 피부양자 자격 상실자는 52만3000명으로, 지난해(78만3000명)에 이어 2년 연속 50만 명을 넘겼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올해 전국 공시지가가 평균 8.03% 뛰면서 ‘공시가 9억원, 연소득 1000만원 미만’이라는 피부양자 요건을 벗어난 은퇴자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내년엔 올해 급등한 집값이 또 반영되는 데다 정부가 공시가격을 최대한 현실화한다는 방침이어서 종부세와 건보료 부담은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한 채뿐인 집값 올랐다고
국민연금 절반을 보유세·건보료로 내야"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모씨(73)는 최근 생소한 고지서 두 개를 받았다. 지난달 종합부동산세 고지서가 시작이었다. 김씨가 사는 아파트 공시가격이 작년 8억원에서 올해 10억원으로 오르면서 생전 처음 종부세 납부자가 됐다. 종부세를 포함해 올해 내야 할 보유세는 311만8000원. 작년(220만원)보다 약 90만원 늘었다.

더 당황스러웠던 건 지난 1일 날아온 건강보험료 고지서였다. 김씨는 은퇴 후 딸의 피부양자로 등록해 15년 넘게 건보료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아파트 공시가 상승으로 더는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할 수 없고, 이달부터 24만1000원을 지역보험료로 납부해야 한다는 게 건강보험공단의 알림이었다. 김씨는 “소득이라고는 한 달 95만원 나오는 국민연금밖에 없는데 소득의 절반 이상을 세금과 건보료로 내게 생겼다”며 “평생 쉬지 않고 일해 집 한 채 산 게 그렇게 큰 잘못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은퇴자 사이에 “정부의 주택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으로 직격탄을 맞았다”는 아우성이 커지고 있다. 보유세 납부액이 크게 늘어난 것은 물론 건보 피부양자 자격을 잃고 보험료까지 새로 내야 할 은퇴자가 급증하면서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올해 피부양자 탈락자는 52만3000명으로, 전체 피부양자(1951만 명)의 2.7%에 이르렀다.

보유세·건보료 二重苦에 직면

피부양자 자격 상실자는 2015~2017년엔 연평균 44만3000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78만3000명으로 확 뛰더니 올해도 50만 명을 넘겼다. 지난해는 7월 시행한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영향이 컸다. 피부양자로 인정해주던 형제·자매를 ‘원칙적 불허’로 바꿨고 소득·재산 조건도 강화했다. 이 바람에 작년 7월에만 30만 명이 한번에 피부양자 자격을 잃고 지역가입자가 됐다.

올해는 공시가격 급등이 크게 작용했다. 올해 부동산 공시지가는 전년보다 8.03% 올라 2008년(10.05%) 이후 최대폭 증가했다. 정부는 작년 7월부터 부동산 공시가격이 9억원이 넘으면서 연소득 1000만원을 초과하면 피부양자에서 제외하기로 했는데, 공시가 상승으로 이 요건에 걸리는 사람이 속출했다. 이들은 앞으로 최소 월 24만원 이상의 건보료를 내야 한다. 이종복 퇴직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피부양자 중에는 집 한 채에 소득은 연금밖에 없는 은퇴자가 많다”며 “집에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공시가를 올린 다음 20만원 넘는 건보료를 물리면 노후 생활이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공시가격 9억원은 종부세 부과 기준이기도 하다. 올해 주택 공시가가 9억원을 초과한 은퇴자들은 종부세와 건보료 부담이 한번에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재산보험료부터 개선해야”

피부양자는 건보 혜택을 받지만 보험료를 한푼도 안 내기 때문에 건보 재정에 악영향을 준다.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방향은 맞다. 하지만 피부양자에서 탈락하면 지역가입자로 자동 전환되는데, 지역가입자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재산에도 보험료를 물리는 것이 문제다. 사회보험료는 소득과 같은 ‘실질적 납부 능력’을 보고 매겨야지 재산에 물리는 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많다. 세계적으로도 재산에 건보료를 물리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정부는 이런 점을 감안해 재산에 대한 보험료 부담을 낮추고는 있다. 하지만 지역가입자가 낸 보험료 중 재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51.1%에서 올 7월 45.5%로 낮아지는 데 그쳤다. 재산보험료 축소 속도는 느린데 피부양자 감소 속도는 빨라 부작용이 커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내국인과 달리 외국인 피부양자가 급증하는 점도 은퇴자의 불만을 키우는 요소다. 외국인 피부양자는 올 들어 9월까지 1만6000명 늘어 2014년 이후 최대폭 증가했다.

기존 지역가입자도 부담이 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강남구에 아파트 한 채를 보유한 정모씨(67)는 주택 공시가격이 작년 10억6400만원에서 올해 13억2000만원으로 뛰었다. 이 탓에 보유세가 361만1400원에서 올해 518만5300원으로 157만3900원 올랐다. 지난달부터 한 달 건보료도 59만5000원에서 63만8000원으로 늘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건보료 부과 체계 2단계 개편이 시행되는 2022년 7월부터는 피부양자 요건이 더 강화돼 은퇴자의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며 “소득 중심의 건보료 부과체계 개혁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재길/서민준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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