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갈등과 화해의 기로에 선 2020년 중동

입력 2019-12-05 18:10   수정 2019-12-06 00:08

2020년에도 중동에서 안정적 평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랫동안 갈등과 혼란이 일상화됐고 강대국 간, 역내 국가 간, 종파 간, 부족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네 차례의 중동전쟁, 8년에 걸친 이란·이라크 전쟁, 알카에다와 IS(이슬람국가)의 전쟁, 현재 진행형인 레바논·시리아·리비아 내전도 모자라 같은 아랍 국가끼리 외교관계 단절과 경제보복으로 으르렁거리고 있다.

이런 막다른 갈등 구도에 최근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9월 14일 예멘 후티 반군이 스스로 배후라고 주장한 아람코 정유시설(사우디 왕정의 핵심자산)에 대한 드론 공격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의 대외정책이 바뀌고 있는 점이다.

첫째, 카타르와의 외교 정상화 움직임이다. 오는 10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리는 제40회 걸프협력회의(GCC) 연례 정상회의에 사우디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이 카타르의 타밈 빈 하마드 알타니 국왕을 공식 초청했다. 2017년 6월 양국 외교관계가 단절된 후 2년6개월 만에 두 정상이 만나게 되면 카타르에 대한 경제제재 철회는 물론, 공동번영과 공동방위를 위해 설립된 GCC 6개국이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동의 미래에 긍정적인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지난달 26일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열린 걸프컵 축구대회에 카타르 경제제재에 동참했던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3국 모두가 전격 참가를 결정함으로써 화해 분위기는 감지됐다. 지난 10월 셰이크 무함마드 알타니 카타르 외무장관이 비밀리에 사우디를 방문해 사우디 고위 관리들과 적대행위 종식과 관계 개선을 논의했다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쿠웨이트가 중재하는 사우디·카타르 대화 국면은 무르익었다. 양국 관계 정상화는 분열됐던 GCC 6개국은 물론, 이집트를 포함한 중동 전역의 화해 무드로 진전될 수 있다.

둘째, 사우디와 이란 간 물밑 대화의 시작이다. 아람코 정유시설 드론 공격의 주체가 누구든 현재 예멘 내전에 이란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확연한 현실에서 오만의 중재로 평화를 위한 절충이 당사자 간에 진행되고 있다. 예멘 내전 종식은 중동 평화를 위한 핵심 이슈이기 때문에 2020년 중동의 권력 지도 재편에 적지 않은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셋째,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중심으로 탈(脫)미국화 정책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수십 대의 드론 공격으로 사우디 국부의 심장부가 공격당한 사실에 사우디 왕정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미국의 방위 시스템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로 이어졌다. 최고의 방어체계라고 믿었던 미국의 패트리엇 미사일이 예멘의 후티 반군과 그들을 지원하는 이란에 의해 운용되는 드론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따라서 2017년 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1100억달러 규모 무기 구매 계약에 대한 불신도 높아지고 있다.

넷째, 드론 공격 사건은 사우디 방어 시스템의 유효성을 재고하게 만들었고, 미국의 탈중동 정책의 저의를 확실히 파악하는 계기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배후로 지목받는 이란에 군사적 보복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한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의 미군 주둔비 절감과 방위비 인상 협상에 이어 사우디와도 방위비 협상에서 파열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드론 공격 이후 거의 한 달 만에 미국은 걸프지역에 약 3000명의 군대를 파병하면서 그 모든 주둔 비용을 사우디가 부담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미국을 도와 IS 궤멸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시리아 쿠르드민병대(YPG)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터키 침공의 길을 열어준 트럼프의 결정도 중동 친미 아랍국가들의 미국에 대한 신뢰를 현저히 떨어뜨리는 촉매제가 됐다.

미국 없는 미래의 중동에서 그들이 택할 수 있는 카드는 이란과의 화해와 역내 아랍 국가끼리의 적대 관계 종식이다. 그런 점에서 2020년 중동은 보다 진전된 화해와 평화의 길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희망 섞인 전망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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