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지구촌 달구는 '연금개혁 전쟁'

입력 2019-12-08 17:32   수정 2019-12-09 00:31

프랑스에서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총파업으로 대중교통 마비 사태가 나흘째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 정부의 연금개혁 골자는 복잡한 퇴직연금 체계를 간소화하고 은퇴 연령과 수급 시기를 늦추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 프랑스의 연금 지출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그러나 노동계의 개혁 중단 요구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다른 국가들도 ‘연금개혁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콜롬비아와 브라질, 칠레에서 연금개편에 반대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연금개혁 후폭풍으로 지방선거에서 대패했다. 오는 12일 총선을 앞둔 영국에서도 연금 수령 연령 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각국이 개혁에 나선 것은 기금 고갈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와 경제활동 인구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다. 각국 공공재정 전문가들은 “복지 재원을 확충하려면 연금개혁과 정년연장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독일은 연금 수급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높이기로 했다. 일본은 70세까지 일할 기회를 주고, 연금 수급 연령도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고 있다. 호주는 여러 개로 나뉜 연금을 합해 자산운용 비용과 수수료를 낮출 계획이다.

한국의 4대 연금은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국민연금은 현행 체제에서 2054년에 고갈된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적자가 커져 2028년까지 10년간 50조원의 혈세를 쏟아부어야 한다. 사학연금도 2028년에 적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이에 따른 부담은 다음 세대에 빚으로 남는다. 빚을 빚으로 돌려 막는 ‘폰지 게임’에서 벗어나려면 지금 세대가 책임지고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연금개혁을 추진하다 정권을 잃은 것을 알면서도 정치생명을 걸고 승부수를 띄웠다. 이와 달리 한국 정부와 여당, 국회는 개혁안 처리를 서로 떠넘기며 ‘표 계산’에만 골몰하고 있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만 생각하고, 정치가는 나라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경구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잖아도 국민의 50% 이상이 “내 노후 준비조차 못하고 있다”며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시간이 없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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