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난 심각…"헌혈자 못 구하면 수술도 못할 판"

입력 2019-12-09 15:56   수정 2019-12-10 03:00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직접 필요한 혈액을 구하기 위해 전국을 헤매고 있다. 저출산으로 헌혈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0~20대가 줄어들어 만성적인 혈액 부족 현상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단체헌혈 비수기인 겨울방학을 앞두고 단기적인 혈액 수급 마비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SNS에서도 “지정헌혈자 구합니다”

9일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9월 말까지 집계된 지정헌혈 횟수는 2만4510건에 달했다. 9개월 만에 작년 한 해 실적(1만9516건)을 훌쩍 넘어섰다. 지정헌혈은 대상을 미리 정해놓고 하는 헌혈이다. 헌혈하는 사람이 미리 수혈자를 지정하거나 환자가 수혈받기 전에 헌혈자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일부 의료기관에서 혈액 재고가 부족한 기간에 보유량을 확보하기 위해 환자 및 보호자에게 지정헌혈을 유도하고 있다”며 “환자들도 선호하다 보니 지정헌혈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위크서비스(SNS)에선 지정헌혈자를 찾는 환자의 게시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응급 수술 또는 다량의 수혈용 혈액이 필요한 수술을 앞둔 환자가 직접 헌혈자를 구하는 글이 대다수다. 일부 환자는 급한 마음에 금전적인 사례를 약속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행법상 매혈은 불법이다. SNS를 통해 지정헌혈자를 구한 이모씨(26)는 “아버지가 흉부외과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병원에서 지정헌혈자를 구하지 않으면 수술을 안 해주겠다고 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글을 올렸다”며 “혈액이 없다는 병원 설명에 그동안 모아온 헌혈증서를 제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저출산·고령화로 혈액 공급 ‘비상’

수혈용 혈액은 대한적십자사 중앙혈액원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의료기관에서 요청하면 공급한다. 의료기관의 수혈용 혈액 부족 사태는 혈액원에서 안정적으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말라리아가 발병해 헌혈이 제한된 지역이 확대되고 9월 이후 태풍이 몇 차례 오면서 의료기관에서 원하는 만큼 혈액을 공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한 의사는 “9~10월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들어와도 혈액이 없어 상급병원으로 보내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저출산·고령화로 혈액 부족 현상이 만성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헌혈 10건 중 7건(68.7%)은 10~20대가 제공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10~20대 헌혈 비율은 2014년 78.1%에서 지난해 68.7%로 낮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저출산으로 10~20대 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수혈받는 사람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50대 이상 인구는 늘어나면서 혈액 부족의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지난해 수혈용 혈액 적정 보유량(5일치)을 유지한 날은 97일(26.5%)에 불과했다. 올해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8월까지 혈액 보유량이 5일분 이상이었던 날은 49일(20.2%)에 불과했다.

한 대학병원장은 “혈액이 부족할 때마다 학생이나 군인에게 기대는 데 한계가 있다”며 “직장인들이 헌혈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헌혈 시 휴식시간을 주는 ‘헌혈 공가제’ 등을 확대해 30대 이상 헌혈 비율을 높이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설명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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