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경 개척자' 김우중 영면…이제 그 도전 누가 하나

입력 2019-12-10 17:37   수정 2019-12-11 00:40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9일 밤 타계했다. 향년 83세. 모든 인생엔 부침이 있기 마련이지만 고인(故人)만큼 극적인 성공과 실패의 영욕을 보여준 사람은 많지 않다. 맨주먹으로 일어나 재계 2위 그룹을 일군 기업인이자 천하의 제너럴모터스(GM)를 그로기로 몰아넣은 불세출의 승부사였다. 동시에 외환위기 후폭풍에 쓰러져 모든 성취와 명예를 날려버린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이제 영면(永眠)에 들어가 지난 20년간 천형(天刑)처럼 눌러쓴 자책과 회한의 면류관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이로써 한 시대가 지나간다는 추억을 말할 수밖에 없다. 김우중과 대우의 시대는 이미 20년 전에 막을 내렸지만 그 시대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은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하고 절실하다. 김우중은 20세기 한국의 창(窓)이었다. 우리는 그의 눈과 발을 통해 바깥에 시선을 돌리게 됐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세계 질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난한 한국인이 장차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됐다. 그리고 정주영 현대 창업주와 구자경 LG 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 같은 거목들이 그 시절을 함께했다. 이들은 때로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하면서 ‘우물 안 개구리’ 신세였던 한국에 새로운 지평을 활짝 열어젖혔다.

김우중은 ‘프런티어맨(변경 개척자)’이었다. 모험을 마다하지 않고 줄곧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섰다. 1990년대 전인미답의 동유럽 시장에 눈을 돌린 이후 1년에 200일 이상 해외에 머물며 비행기와 공항에서 새우잠을 잤다. 이동시간과 호텔비를 아끼기 위해 일부러 심야 항공편을 예약했다.

그는 사업과 장사를 분리할 줄 아는 근대적 의미의 기업인이기도 했다. 아프리카 밀림의 독충과 불면의 열대야에 시달리면서도 열대 과일을 수입하자는 참모들의 건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미래 먹여살릴 '21세기 탱크주의'가 절실하다
모험 마다않고 新시장 개척


우리는 요즘 우주 개척에 도전하는 아마존과 테슬라에 탄성을 보내지만 그 시절 김우중의 원대한 꿈과 스케일은 지금의 제프 베이조스나 일론 머스크에 결코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김우중 시대의 퇴장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21세기 변경은 누가 개척할 것이냐다. 야성으로 충만한 기업가 정신을 어떻게 세울 것이냐다. 지난 세월 김우중을 비롯한 많은 기업인이 개척한 베이징, 뭄바이, 자카르타, 하노이, 리야드, 두바이는 이제 여기저기에서 몰려온 정착민들의 도시로 변했다. 20세기의 넘쳐나던 기회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경쟁자로 돌아섰다.

무엇보다 5년, 10년 뒤 우리를 먹여 살릴 새로운 산업이 보이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흐름에 올라탈 지식과 기술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빈곤하다. 반기업 정서와 규제의 창궐로 많은 기업인은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사업을 안전하게 접을 궁리만 한다.

그럼에도 정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노력해 이 정도의 생존기반을 마련한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없다. 좌파 이념의 확산은 시장경제의 효율을 크게 떨어뜨리고 노동조합과 이익집단들을 더 극성스럽게 만들었다. 법의 지배, 경제적 자유, 공공 부문의 억제, 규제 개혁은 계속 멀어져가고 있다.

기업인들에게 이 모든 상황을 돌파할 기업가 정신을 주문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주저앉으면 다 죽는다. 새로운 변경을 찾아 나서야 한다. 신사업이든 신시장이든 결사적으로 덤벼들어야 한다. 세계 속에서 한국은 작은 나라이고, 기업들은 더 작은 존재다. 하지만 김우중의 분투는 도전하고 개척하는 기업가 정신의 위대함을 보여줬다. 대한민국의 심장이 세계 속에서도 뛸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우리의 미래는 예나 지금이나 기업인들에게 달려 있다. 어차피 정치는 조역 아니면 악역이다. 언제 위기가 아닌 적이 있었던가. 어디 갈림길이 없는 곳이 있었던가. 경제 대전환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미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경영의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 21세기의 또 다른 김우중들이 나서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기업인들의 숙명이다.

조일훈 편집국 부국장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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