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근거 법도 없이 내년도 예산안에서 2조원 가까운 예산을 확대 편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야 간 이견으로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불용 처리될 가능성이 큰데도 무리하게 예산을 편성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11일 국회에 따르면 전날 본회의를 통과한 2020년도 예산안에는 기초연금 예산 13조1765억원, 장애인연금 예산 7862억원이 지난 9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원안대로 반영됐다. 기초연금은 기준연금액 30만원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20%에서 40%로 늘려 지난해보다 1조6813억원(14.6%) 확대됐다. 장애인연금은 전년 대비 9.2% 늘어난 664억원이 주거 및 교육급여 확대, 차상위계층 수급자의 기초급여액 인상 등의 명목으로 추가 편성됐다.
그러나 연금 인상의 근거가 되는 기초연금법과 장애인연금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은 이날까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당장 내년부터 반영되는 추가 편성 예산은 쓰이지 못한다. 국회예산정책처 관계자는 “계류 중인 법안이 개정돼야 집행 부서인 보건복지부가 기초연금을 인상할 수 있다”며 “법안 통과 및 시행 시기가 늦어지면 예산 인상분은 쓰이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법안 통과 못하면 연금 인상 불가"…민주당, 알면서도 복지예산 확대
사회서비스원·공공의료대학원도 설치 근거법안 없이 예산에 반영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기초연금법과 장애인연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내년도 예산안에서 연금 인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련 예산을 확대 편성했다. 민주당 원내행정실은 지난 3일 소속 의원들에게 ‘정기국회 미통과 시 문제 법안’ 자료를 보냈다. 자료에는 국회에 계류 중인 기초연금법과 장애인연금법을 정기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하면 연금 인상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기초연금법 개정안은 2020년부터 소득 하위 40% 노인의 기초연금을 30만원으로 인상하고, 2021년에는 모든 기초연금 수급자의 기준연금액을 30만원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장애인연금법은 2020년 기초생활보장 교육급여 및 주거급여 대상 장애인의 장애인연금을 30만원으로 인상하고 2021년에는 모든 장애인연금 수급자의 기초급여액을 30만원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하도록 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은 보건복지위원회 예산 심사 당시 법률 제정을 전제로 하는 연금 예산의 감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승희 한국당 의원은 “기초연금은 법률 제정을 전제로 증액 편성됐으므로 증액분을 감액해야 한다”며 “연금 지급을 위한 지방비 부담도 늘어 재원 대책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 역시 “법률 개정 후 예산심의가 필요하다”며 “총선을 앞둔 선심성 세금 살포”라고 비판했다.
정부·여당은 사회서비스원과 공공의료대학원 설치 예산 역시 근거법이 없는 상태로 내년 예산에 편성했다. 사회서비스원 관련 예산은 올해 59억7000만원에서 내년에는 120억5000만원으로 확대됐고, 공공의료대학원 설치 예산은 9억5000억원이 반영됐다. 정부가 제출한 원안대로다. 그러나 예산 집행의 근거가 되는 사회서비스원법 제정안은 야당의 반대로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공공의료대학원도 의사 수 확대를 우려하는 의료업계의 반대로 관련 법안이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여당이 예산의 집행 근거가 되는 법안도 없이 졸속으로 예산을 심사하고 편성한 것”이라며 “불용 예산을 최대한 줄여야 할 정부·여당이 쓰지 못할 가능성이 큰 예산을 앞장서서 편성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산 편성의 경직성과 국회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근거법이 갖춰진 뒤 예산을 편성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소현/고은이 기자 alp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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