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저고용·저투자가 한국 경제의 ‘뉴노멀’이 되면서 백성들이 편안하게 먹고사는 안양의 길이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국민의 생애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지만 국민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통계청의 ‘2019 사회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의 77%가 “내년 집안살림이 올해보다 나빠지거나 그대로일 것”으로 생각한다. 2년 전보다 3%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계층 이동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 비율도 22.7%에 불과해 10년 전보다 15%포인트 감소했다. 계층 상승에 대한 기대가 낮은 사회는 역동성을 잃게 된다.
성장과 고용을 견인하는 기업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경제법령의 형벌 규정 2657개 가운데 83%인 2205개가 최고경영자(CEO)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285개 경제법령에서 형사처벌 항목이 1999년 법률당 평균 6.55개에서 2019년 9.32개로 늘어났다. 최고경영자를 예비 범법자로 만드는 환경에서 기업가 정신과 투자 의욕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기업경영의 안정성 저하는 해외투자 급증으로 이어졌다. 기업의 해외투자는 2017년 446억달러에서 2018년 498억달러로 늘어났다. 올해 상반기엔 291억달러를 기록했다. 기업을 옥죄는 부담을 피하기 위한 ‘한국 탈출’로 볼 수 있다.
고용이 최상의 복지다. 4개월 연속 30만 명 이상 일자리가 창출됐지만 세금이 만들어낸 관제 일자리 성격이 강하다. 50~60대 일자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제조업 고용은 20개월 연속 감소했다. 지난 2년간 전체 취업자가 30만 명 늘었지만 주 40시간 이상 근로자는 87만 명 줄었다. 경제의 허리인 30·40대가 감소자의 85%를 차지했다. 양질의 일자리인 제조업 추락과 관련이 깊다.
경제의 미래를 책임지는 청년 고용도 위축됐다. 지난 1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청년 실업률은 1.3%포인트 낮아진 반면 우리나라는 2.4%포인트 상승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민생 안정이 중요하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2017~2018년 점포당 평균 종사자 수가 5.8명에서 5명으로 줄었다. 전체 편의점 풀타임 일자리가 4만 개 이상 사라졌다. 최저임금 인상, 주휴수당, 4대 보험료 부담 등이 주요 요인으로 지적된다. 작년 5인 미만 영세업체 일자리는 24만 개 증발했다.
자영업자의 경제 상황이 민심의 바로미터다. 중국의 역대 왕조가 경제 상황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송의 명재상 범중엄은 황제에게 올린 상소에서 농업과 누에고치 생산을 중시하고 백성들의 부역을 경감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왕안석의 신법(新法)도 고리대금과 부역을 줄여 국가 재정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명나라 말기 재상 장거정 또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개혁에 역점을 뒀다. “백성을 괴롭히는 것으로 역참(驛站)만 한 것이 없다”며 역참제를 과감히 정비했다. 각종 경비를 절감해 증세 없는 재정 안정을 도모했다. 적폐의 원인인 관재(官災)에 철퇴를 가한 것도 백성의 안정보다 소중한 것이 없다는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의 전문가 설문조사는 우리 경제의 위협 요인으로 반(反)시장적 정책과 잠재성장률 지속 하락을 들고 있다. 경제와 민생을 살리기 위해서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공리공담(空理空談)에서 벗어나 기업활력 제고와 성장잠재력 회복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지정실자재초야(知政失者在草野). 정책이 실패했는지 여부는 초야의 백성이 더 잘 안다. 로버트 배로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을 ‘소득주도빈곤’이라고 비판했다. 다산 정약용은 먹고사는 게 정치의 으뜸이라고 역설했다. 새해에는 반시장적 정책을 폐기하고 백성들을 배부르고 등 따뜻하게 해주는 실사구시 정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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