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연암대학교(당시 연암축산고등기술학교)를 설립했다. 농촌으로 돌아가 농·축산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학생들을 육성하기 위한 학교다. 설립 당시 입학금은 물론 숙식과 그 밖의 모든 비용을 학교에서 제공해 화제가 됐다. 농·축산업에서 미래를 발굴하려는 노력은 각 사업 영역에서도 이어졌다. 2016년 LG화학이 동부팜한농을 5000억원에 인수하고, LG화학은 그린 바이오를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2003년 정구학 한국경제신문 기자가 연암대학교(당시 연암축산원예대학)에서 구 명예회장을 만났다. 은퇴 후 명예회장의 일상을 살펴보고 그의 인생 철학 등을 들어보기 위해서다. 당시 인터뷰 기사를 두 차례에 나눠 소개한다.<hr style="margin: 25px 0px; border: 1px solid rgb(195, 195, 195); border-image: none; display: block !important;" />
식사를 마치고 거실로 옮겨 커피를 마시며 인터뷰를 계속했다. 가족얘기부터 LG의 지분구조 정리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를 물어보았다.
-가족들은 자주 들르나요.
"안 사람은 이곳에 잘 안와. 별 수 없이 일요일 오후에 내가 올라가지. 가족끼리는 한달에 한번 호텔이나 음식점에서 모여 식사하는데 6월에는 제사다 약혼, 결혼이다 해서 일주일에 두번씩은 모인 것 같아."
-손주들도 자주 만나십니까.
"저희들이 오기도 하고, 내가 부르기도 하고 그래. 다들 잘하는 편이야. 일요일 같은 때 만나서 내가 젊었을 때 기업을 일구던 이야기도 해주고 그러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항상 조상들의 제사를 잘 모시고 어른들을 잘 공경하는 거야."
그는 증조부 만회공(晩悔公)이 조선말기 홍문관 교리(校理)를 지냈던 집안의 유교가풍 때문인지 집안 얘기를 할 때는 유난히 효(孝)를 강조했다. 아들과 며느리, 손주들의 촌수와 이름 등을 들어가며 집안 일에 대해서도 간략히 이야기해 주었다.
-LG의 지분정리는 어떻게 되나요.
"LG가 지주회사로 전환했는데 복잡한 지분구조를 정리하려면 앞으로 2,3년 더 걸릴거야.
전자, 화학, 금융은 구씨쪽이고 정유, 건설은 허씨쪽이지."
-경제가 어려워 난리인데 기업 경쟁력을 높이려면 어떤 분야에 주력해야 한다고 보세요.
"기술이 하도 빠르게 발전하니까 솔직히 나도 어느 쪽으로 가는게 좋은지 잘 모르겠어.
지금은 LG의 가전제품이 일본산보다 우위에 있는 제품이 있는데….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 모듈은 우리가 일본의 히타치나 도시바 등에 수출을 많이 해. 아무래도 기술 경쟁력은 연구개발(R&D)에서 나온다고 봐야지."
-구본무 회장이 '일등 LG'를 밀어붙이면서 그룹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습니다.
"회장이 나름대로 잘하고 있는 것 같아. 내가 보기에 구조조정본부장(강유식 LG 부회장을 말함)과도 호흡이 잘 맞는 것 같고. 사실은 회장한테 절대로 1등하지 말라고 했는데…."
-무슨 얘기입니까. 1위를 하지 말라면 2등만 하라는 얘긴가요.
"(파안대소하며) 절대 1등을 하지 말라고 했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잖아. 예전에는 정말 그랬어. 정치적으로 얻어맞기도 하고 반대세력이라든지 노조로부터 얻어맞을 수 있었어."
-명예회장님이 이끌던 15년전에도 LG의 골드스타가 가전에서 부동의 1위를 하지 않았나요.
"맞아, 그렇지만 그거야 저희끼리(계열사끼리) 싸워서 그렇게 된거지 뭐. 가령 엘리베이터는 같은 계열사인 미쓰비시합작사(나중에 LG가 지분 완전인수)와 LG전자, 두 회사가 죽자살자 싸우더라구. 속내용을 잘 아니까 더 치열하게 싸우는거야. 그래서 최고 품질의 엘리베이터 제품이 나와 기분이 좋았지만 ."
-전경련 회장 시절은 어땠나요.
"지난 87년부터 2년간 했었는데 노조 파업이 가장 심했던 시절이라 여러가지로 힘들었어. 정치적 상황도 지금보다 나빴던 것 같구." (구 명예회장은 이 시절에 설화로 몇차례 시달렸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대선에도 나갔었는데 혹시 정치를 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요.
"정치요, 난 욕심이 없어서 그런 생각은 안듭디다."
취재를 마친 기자에게 그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버섯사업에 4,5년간 돈을 쏟아붓다가 요즘은 이익을 내. 우리나라에서 대형 기업화로 돈을 벌 수 있는 농업은 버섯과 양돈 뿐일게야."
바로 그때 그의 셔츠 앞주머니에 들어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역시 LG가 만든 휴대폰이었다.
"그래, 별 일 없다니까… "
손님이 있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는 그에게서 오늘의 한국 경제를 일궈낸 기업영웅과 우리 이웃의 편안한 시골노인 모습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정리=고재연 기자/인터뷰 원문=정구학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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