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받는 대기업, 영화속 '안티-히어로' 같아…악당같지만 영웅"

입력 2019-12-15 17:34   수정 2019-12-1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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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은 과연 독점적일까, 기술기업은 정말 악마 같은 존재일까, 기업은 어느 누구보다 부정직할까….’ 저명한 미국 경제학자인 타일러 코웬 조지메이슨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 4월 펴낸 《기업을 위한 변론(Big Business:A Love Letter to an American Anti-Hero)》에서 던진 질문이다. 그의 대답은 ‘노(no)’다. 코웬 교수는 책에서 “많은 이들에게 대기업은 탐욕스러움과 노동자를 괴롭히는 권력, 소비자의 행복은 아랑곳하지 않는 존재로 다가온다”며 대기업에 덧씌워진 오명을 하나하나 파헤쳤다. 《기업을 위한 변론》의 한국어판 출간을 맞아 지난 11일 미국 워싱턴DC 인근 알링턴에 있는 조지메이슨대 부설 메르카투스센터 연구실에서 코웬 교수를 만났다.


▷대기업을 ‘안티 히어로(anti-hero)’라고 한 게 눈에 띕니다.

“대기업이 비난을 받으면서도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대기업에 대해 아주 부정적이면서 동시에 아주 긍정적인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습니다. 마치 영화에서 ‘배드 가이(악당)’처럼 보이지만 영웅이고, 관객들은 계속 그를 보고 싶어 하듯이요. 멀어지고 싶으면서도 매력적인 겁니다.”

▷‘반(反)대기업 정서’가 커진 이유는 뭡니까.

“지식인과 언론, 민주당 심지어 (기업인 출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반대기업적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미국인들은 대기업 제품을 좋아하고 그걸 쓰면서 행복해하고, 대기업에서 일하고 싶어 합니다.”

▷기업 중엔 나쁜 기업도 있지 않나요.

“소비자에게 제대로 된 가치를 못 주는 기업이 나쁜 기업입니다. (기업 경영이 잘못돼 대량해고를 하는데 경영자가 큰돈을 번) 위워크 같은 경우도 나쁜 기업의 사례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대기업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등 긍정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한국도 삼성 같은 대기업이 5개 정도 더 있다면 일자리나 임금을 늘리는 데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늘리는 것’이란 밀턴 프리드먼의 기업관은 틀렸다고 비판했습니다.

“돈을 버는 건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라면 그보다 더 큰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저커버그는 정말로 모든 사람들을 연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포드자동차의 헨리 포드는 미국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당시로선 파격적인) 시간당 5달러 임금을 도입했습니다. 그런 비전이 기업 활동에 추가적인 에너지를 제공합니다. 페이스북이나 포드가 이익만 생각했다면 효율적인 기업이 못 됐을 겁니다.”

▷한국에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상대로 불공정 경쟁을 한다’는 인식이 많습니다.

“대기업이 정부에 로비를 하거나 뇌물을 써 특혜를 받는 건 불공정이지만, 더 싸고 더 좋은 제품 즉 혁신으로 시장을 차지한다면 그건 진보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경쟁하면 중소기업이 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쉽게 말할 순 없습니다. 12년 전만 해도 페이스북은 존재감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대기업이 됐습니다. 1980년대 미국의 30대 대기업 중 대부분은 지금 더 이상 (과거처럼 지배적인 대기업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선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올라서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한국과 미국 상황이 같진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도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많아지면서 역동적인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K팝을 보세요. (K팝과 관련 기업들은) 20년 전만 해도 그리 크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시아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지배적인 플레이어입니다.”

▷대기업의 독점 때문에 미국 시장이 이전보다 덜 경쟁적이란 지적은 맞는 얘깁니까.

“특정 분야에서 기업 수가 과거보다 더 적을 순 있지만 미국 시장은 이전보다 더 경쟁적입니다. 아마존은 책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책 가격은 (대형 오프라인 서점인) 반스&노블보다 훨씬 쌉니다. 페이스북과 구글은 (대부분 서비스 가격이) 공짜입니다. 이건 독점이 아닙니다.”

▷경쟁 감소로 미국의 가구당 인터넷 통신비가 프랑스보다 훨씬 비싸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토마 필리폰 뉴욕대 교수가 최근 펴낸 《거대한 반전》에서 이런 분석을 해 주목받고 있다.)

“미국은 많은 분야에서 프랑스보다 경쟁이 심합니다. 임금도 프랑스보다 높고요. 몇몇 사례만으로 프랑스는 경쟁이 활발한 ‘원더랜드’고 미국은 독점적이라고 하는 건 진실과 정반대입니다.”

▷페이스북, 구글 같은 대기업을 분할해야 한다는 정치권 주장은 어떻게 봅니까.

“그 기업들은 매우 혁신적입니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전 세계에서 사업을 합니다. 서비스 가격이 거의 공짜고 사용자들에게 인기 있는 최고의 비즈니스를 쪼개겠다니, 그건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미국은 과거 마이크로소프트와 스탠더드오일 같은 대기업을 ‘반독점’ 차원에서 분할한 적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사례별로 봐야 합니다. 만약 스탠더드오일이 석유를 저렴하게 팔았는데도 쪼갰다면 실수였겠죠. 소셜네트워크 시장과 이메일 시장은 (스탠더드오일이 지배한 석유 시장과 달리) 경쟁이 심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페이스북을 안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니 진짜 독점이 아니죠.”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부유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은 어떻게 봅니까.

“빈곤층 교육을 위해 더 많은 돈을 투자하는 건 좋은 생각이지만 저라면 부유세를 걷어서 투자하진 않겠습니다. 매년 2%의 부유세를 걷어가면 20~30년 후엔 그 부의 대부분이 사라질 겁니다. 그건 경제의 종잣돈을 갉아먹는 것과 같습니다. 궁극적으론 투자와 경제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경제는 사상 최장기 호황입니다. 혹시 내년에 불황에 빠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불황 신호는 없습니다. 일자리 시장은 훌륭하고 물가는 낮고 소비자 심리는 좋습니다.”

▷미·중 무역전쟁은 어떻게 될까요.

“미국과 중국은 신냉전 상황입니다. 합의를 해도 깨질 가능성이 높고, 지금보다 더 큰 싸움이 있을 겁니다. 중국은 옛 소련보다 훨씬 유능하고 부유하고 경쟁력 있는 상대입니다. 제 생전엔 냉전이 안 끝날 것 같습니다.”

▷누가 승리할까요.

“경제적 사상자만 속출하고 확실한 승자나 패자는 없는 교착상태가 될 겁니다. 중국은 조만간 경제 규모에서 미국을 추월하겠지만 빠른 고령화, 노동력 감소, 홍콩과 북서부(신장위구르)의 체제 불만을 걱정해야 합니다. 믿을 만한 동맹도 별로 없습니다. 중국을 겪어본 나라들은 중국을 별로 안 좋아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중국보다 유리합니다.”

▷한국은 누굴 선택해야 할까요.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매우 섬세하게 균형을 잡는 게임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북한과의 안보 문제가 있기 때문에 미국에 좀 더 가까이 있어야겠죠.”

▷미·중 갈등으로 한국 경제도 어렵습니다.

“무역전쟁 때문에 한국 스스로 경제를 컨트롤하기 어렵습니다. 당분간 성장이 둔화될 겁니다. 미·중이 서로 친하지 않은 세상에 맞게 한국도 기어를 다시 조정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국민 정서적으로 내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본과 잘 지낼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필리핀, 베트남, 인도 같은 다른 아시아 나라들과의 관계에서 보다 리더십을 발휘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정학적 싸움이 벌어질 때 한국이 더 유리한 입지에 설 수 있습니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큰 나라지만 아직도 작은 플레이어로 행동하는 데 익숙한 것 같습니다.”


■ 타일러 코웬은…

타일러 코웬 조지메이슨대 경제학과 교수(57)는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2011년 ‘세계 100대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은 경제학자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11년에 경제학자들에게 ‘지난 1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를 물었을 때 36명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과 미국 경제에 주는 시사점을 다룬 《거대한 침체》 출간 영향이 컸다.

코웬은 인기 경제학 블로그 ‘한계혁명’을 공동 운영하며 블룸버그통신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경제학뿐 아니라 미·중 무역전쟁, 북핵 문제 등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쓴다. 《4차 산업혁명, 강력한 인간의 시대》 《경제학 패러독스》 《정보탐식가의 시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책을 쓴 건 더 많은 걸 알려고 한 호기심 덕분이었다”며 “다음에 낼 책은 인재에 관한 책으로, 인적 자본을 기르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기용하는 방법을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1962년 미국 뉴저지 출생
△조지메이슨대 경제학과 졸업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조지메이슨대 부설 메르카투스센터 소장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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