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이 은퇴 대국 첫 판에서 NHN이 개발한 국산 바둑 인공지능(AI) '한돌'에 승리하며 기선을 제압했다.
이 9단은 18일 서울 강남구 바디프랜드 사옥에서 열린 '바디프랜드 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 vs 한돌' 치수고치기 3번기 제1국에서 92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치수고치기는 접바둑 형태로 이세돌이 먼저 2점을 놓고 시작하되 7집 반을 한돌에게 주는 것이다. 보통 바둑 경력이 차이 나는 사람들이 대국을 조정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 9단은 2016년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AI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5번기 대국에서 1-4로 졌다. 그는 알파고와의 대결이 은퇴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날 한돌과의 대결에서 치수고치기 방식을 이용한 이유도 "인간이 AI를 이기긴 어렵다"는 전제에 합의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이 9단에 맞선 한돌은 올해 1월 국내 톱5 기사인 신민준·이동훈·김지석·박정환·신진서 9단과의 릴레이 대국에서 전승을 거둔 바둑 AI다. 올 8월에는 세계 AI 바둑대회 '2019 중신증권배 세계 인공지능(AI) 바둑대회'에 처음 출전해 3위에 올랐다. NHN도 한돌이 2016년 이 9단과 대결한 알파고 당시 버전보다 기력에서 앞선다고 자평한 바 있다.
하지만 한돌은 이날 경기 중반 어이없는 '악수'를 두면서 이 9단에 승리를 내줬다.
이 9단은 경기 중반 우변 자신의 돌을 돌보는 대신 상변에 집을 마련했고, 한돌은 우변 흑돌을 둘러싸고 공격에 들어갔다. 만약 이 9단의 흑돌이 죽거나 살더라도 큰 손해를 본다면 단숨에 형세가 뒤집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흑돌을 공격하던 한돌이 자신의 돌이 잡히는 '장문'을 한돌이 파악하지 못해 공격하던 요석 3점을 오히려 죽여버렸다. 2점을 내주고 바둑을 시작한 한돌은 어이없는 실수로 3점을 잡힌 후 승률이 3~4%까지 떨어졌다.
이날 대국 해설을 맡은 김만수 8단은 "이세돌 9단이 원래 공격적인데 오늘은 수비적으로 나왔다. 집을 많이 가져가면서 한돌의 공격을 묘수로 뚫었다"며 "그래서 한돌이 당황하지 않았나 본다"고 설명했다.
이 9단의 1국 승리로 내일 정오 펼쳐질 2국에선 이세돌과 한돌이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대결하는 '호선'으로 진행된다.
이 9단은 1995년 12세의 나이에 프로가 된 이후 조훈현과 이창호의 계보를 잇는 전설적 바둑 기사다. 2000년 32연승을 기록한 데 이어 2002년에는 프로 3단으로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이창호가 세운 최저단(5단) 세계대회 제패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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