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가이드라인 의결이 보류된 것은 ‘이사 해임 주주제안’ 등의 내용이 상위법과 충돌한다는 비판이 많았기 때문이다.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모호한 규정이 많아 기업 경영에 무소불위식으로 간섭할 빌미를 줄 것이란 우려도 높았다. 하지만 수정안에서도 배당 부실, 과도한 임원 보수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해 달라는 경영계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국민연금이 주주제안을 할 때 고려할 사안에 ‘기업의 여건이나 산업별 특성’을 추가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급락 시 1년 단위 단계적 절차를 밟도록 하는 등 일부 개선된 점도 있다. 하지만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 권익을 침해할 우려가 발생한 경우’는 원안처럼 중간 단계 없이 곧바로 주주제안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나 국민연금이 원하면 맘대로 경영 개입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특히 초안에선 국민연금이 주주제안을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했지만, 수정안에선 이를 전면 삭제하고 ‘상법 및 자본시장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적절한 주주제안 등 추진’이라고 달랑 한 줄로 간소화했다. 오히려 기업들의 불확실성만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1년 단위로 돼 있던 주주권 행사의 단계별 추진 기간을 기금위나 수탁자책임위원회 의결이 있으면 축소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개악’이란 평가를 받는다.
모호한 조항으로 가득한 지침을 근거로 국민연금이 경영에 간섭한다면 기업들의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기업 경영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그 피해는 노후자금을 맡긴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정부는 ‘깜깜이 지침’을 강행 처리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이제라도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에 나서야 할 것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