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100만명에 뿌린 9000억…"못 받으면 손해?" [조재길의 경제산책]

입력 2019-12-19 09:58   수정 2019-12-19 14:35

근로장려금(EITC) 제도가 처음 도입된 건 2006년입니다. 2009년부터 실제로 지급했구요. 2015년부터는 지급 대상이 종전의 근로소득자에서 자영업자로 확대됐습니다.

근로장려금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반기는 제도입니다. 단순히 돈을 뿌리는 게 아니라 근로소득 금액을 기준으로 장려금을 산정하기 때문에 ‘일하는 복지’의 기본 틀이 될 수 있지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상당수 선진국들이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배경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어제 발표한 근로장려금 집행 실적을 보면 우려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지급 대상과 금액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늘고 있기 때문이죠.

근로장려금은 2016년까지만 해도 연간 기준 230만 가구에 1조원 안팎 지급돼 왔습니다. 올해는 473만 가구에 5조300억원이 실제로 지급됐지요. 2017년 이후 갑자기 늘었습니다.

원인은 ‘지급대상 확대’에 있습니다. 2017년 근로장려금을 받을 수 있는 단독가구의 연령 기준이 종전 만 50세 이상에서 40세 이상으로 낮춰졌습니다. 작년엔 이 기준이 다시 30세 이상으로 하향 조정됐고, 올해는 아예 폐지됐지요.

동시에 소득·재산 기준치를 높여 대상자를 대폭 확대했습니다. 나이가 어리더라도 재산이 2억원을 밑돌거나, 연소득이 3600만원(맞벌이 가구 기준)을 밑돌면 최대 300만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자녀 수’가 근로장려금의 절대액을 좌우하는 미국과 시스템적으로 차이 나는 부분입니다.

특히 올해는 20대 107만 가구가 총 9323억원의 근로장려금을 수령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작년엔 3만 가구(288억원)에 불과했었지요. 근로장려금을 받은 ‘혼자 사는 20대’는 103만 명에 달했고, 총 8702억원을 수령했습니다.

올해 근로장려금을 받은 가구 중에서 20대 이하의 젊은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가까운 27.6%에 달했습니다. 다른 연령대를 압도하는 비중입니다. 예컨대 30대는 13.3%, 40대는 16.3%, 50대는 18.5% 등이지요.

우리나라의 2000만 가구중 4분의 1이 갑자기 근로장려금을 받게 되면서 ‘근로자가 더 열심히 일하도록 독려하는’ 근로유인 제고 효과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신 정부는 “소득 재분배 효과가 크게 높아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요. 국세청이 어제 배포한 자료를 보면 “올해 근로장려금 확대로 소득 불평등 완화 효과가 2~3배 강화됐다”는 평가가 등장합니다. 또 “올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1분위(저소득층) 소득이 증가하는 등 소득·분배 여건이 확인히 개선됐다”고도 했지요.

요즘 젊은층 사이에선 “근로장려금을 받지 못하면 손해”라는 얘기가 돕니다. 대학생들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근로장려금을 신청해 손쉽게 혈세를 가져가는 게 대표적인 편법 사례이죠.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근로장려금은 꼭 필요한 제도이지만 규모가 갑자기 너무 커지고 있는데다 사실상 무차별적으로 지급하는 게 문제”라며 “20대 이하의 경우 근로장려금을 확대하기보다 교육이나 훈련 프로그램을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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