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이 말이 회자되는 것은 정경심 씨 재판에서 판사와 검사 간 고성이 오간 ‘전대미문 재판’ 때문이다. 가장 공정하고 절제돼야 할 법정까지 전에 없는 불신이 가득하다. ‘4+1 협의체’라는 임의집단이 정부도 모르게 512조원의 초(超)슈퍼예산을 주무른 ‘깜깜이 예산’, 15억원 초과 고가주택 담보대출을 금지한 ‘12·16 부동산 대책’에도 ‘전대미문’이 수식어로 붙었다.
양파껍질 벗기는 듯한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은 전대미문의 끝판왕이다. ‘조국 사태’ 이래 숱한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어디까지 번질지 알 수 없다. 듣도 보도 못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를 들고나와 자기들끼리 담합과 갈등을 빚는 범여권이나, 삭발·단식·장외투쟁으로 일관하는 제1야당을 본 적이 있던가.
올해 내내 전대미문의 연속이었다. 미·중 무역전쟁, 일본 수출규제,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은 세계 무역의 ‘큰 판’이 바뀌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 기업들은 ‘전대미문의 최악 불확실성’을 걱정하고, 내우외환에 빠진 자동차업계는 “전대미문의 대전환에 처했다”고 토로한다. 1%대 저성장, 추락하는 40대 고용, 그런데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청와대 모두 처음 본다. 미국도 ‘전대미문’의 상황이다. 대통령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했는데 주가는 최고치를 경신했다.
최초의 남·북·미 정상 판문점 회동(6월)이 연말에는 북한이 어떤 전대미문의 도발을 해올지 모르는 상황으로 뒤바뀌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막말 폭탄’에도,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 하늘을 휘저어도 제대로 항의도 못 하는 정부도 전무후무할 것이다.
민초들이 전대미문에 단련되다 보니, 홍보마케팅 문구에도 전대미문이란 표현이 서슴없이 나온다. 시대가 만든 ‘언어 인플레’다. 새해에는 부디 솥뚜껑 보고 놀랄 일이 없었으면 한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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