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에 맞는 통계 갖다 써놓고…뒤늦게 '옐로카드' 날린 홍남기

입력 2019-12-27 17:33   수정 2019-12-28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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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신뢰를 못 받는 통계는 의미가 없다”며 통계청을 겨냥해 공개적으로 경고장을 날린 것은 지난 10월 ‘사건’이 발단이 됐다. 통계청이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발표한 지난 10월 29일 ‘사상 초유’의 일이 한꺼번에 터졌다. 우선 통계 내용이 그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비정규직 근로자는 작년보다 86만7000명 증가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4년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이었다.

경제 전문가들을 더 놀라게 한 건 발표 직후 나온 강신욱 통계청장 발언이었다. 강 청장은 “올해 비정규직 통계는 과거 통계와 비교 불가하다”고 선언했다. 부가조사와 별도로 실시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의 조사 방식 변경이 비정규직 증가폭이 크게 나온 데 영향을 줬다는 점 때문이었다. 통계는 과거 통계와 비교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이를 불가하게 하는 ‘시계열 단절’은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지를 사전에 충분히 설명한 뒤 공식적인 통계 개편 절차를 밟는 게 보통이다. 통계를 발표하는 당일에 시계열 단절을 선언하는 일은 전례가 없었다. 작년 ‘가계동향조사 논란’에 이어 비정규직 통계 논란까지 불거지자 ‘통계청이 발표하는 통계를 믿을 수 있긴 한 거냐’는 불신이 팽배해졌다.

통계청 경고한 부총리

통계청의 신뢰성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홍 부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통계위원회를 주재하고 통계 작성 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부총리가 국가통계위원회를 직접 주재한 것은 2014년 이후 5년 만이다.

정부는 비정규직 통계 작성과 발표 과정에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통계 조사 방식 변경이 다른 통계에 영향을 주는지 여부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는 점이 하나다. 강 청장이 언급한 조사 병식 변경은 올 3월과 6월, 9월에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경제활동인구 조사 때 이전과 달리 ‘고용 기간을 정하지 않는 근로자’에게도 ‘고용 예상 기간’을 묻는 질문을 추가했다. 이로 인해 이전까지 자신을 정규직으로 알던 근로자가 비정규직이었음을 깨닫는 사례가 늘었다는 게 통계청 설명이다. 이런 변동은 올 3월 처음 이뤄졌으니 비정규직 통계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 수 있었음에도 7개월간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게 잘못이라는 것이 기재부 지적이다.

조사 방식 변경을 통계청 내부에서 ‘깜깜이’로 진행한 것도 문제로 거론된다. 이 정도로 파급력이 큰 변동 사항이면 외부 전문가 등의 객관적인 검증을 거쳤어야 했다는 것이다. 실제 여당에서조차 이번 조사 방식 변경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통계청은 국제노동기구(ILO) 권고에 따라 조사 방식을 바꿨다고 하지만 비정규직 근로자 조사 강화는 ILO에서조차 기준이 명확히 정비되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는 앞으로는 통계 조사 방식을 변경할 때 외부 전문가 검증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비정규직 급증 본질은 안 변해”

국가 통계를 둘러싼 논란은 현 정부 들어 유독 자주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엔 ‘가계동향조사 논란’이 있었다. 소득 분배 현황이 담긴 가계동향조사는 당초 유사 통계와 중복 등 문제로 폐지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2017년 소득 분배가 개선됐다는 결과가 나오자 정부는 폐지 방침을 번복했다. 작년 소득 분배가 나빠졌다는 정반대 결과가 나온 뒤 대처는 더 문제였다. 여당을 중심으로 ‘표본 변화로 통계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고, 당시 황수경 전 통계청장의 경질로까지 이어졌다. 정부가 입맛에 맞는 통계만 취사선택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정부가 뒤늦게 통계 조사 개선 방안을 내놨지만 이미 통계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져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번 대책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급증’이란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통계청장)는 “조사 방식 변경이 비정규직 통계 변화에 미친 영향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10여 년 전부터 조사 대상자에게 고용 예상 기간을 묻는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비정규직이 늘어난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고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급선무라는 얘기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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