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암호화폐 세금 부과 앞서 과세 기준부터 마련해야

입력 2019-12-30 17:52   수정 2019-12-31 00:14

국세청이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에 803억원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외국인의 소득세를 빗썸이 제대로 원천징수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암호화폐 과세 체계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세청의 과세는 무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세청은 외국인이 빗썸을 통해 출금한 금액 전체를 일시적으로 발생한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세금을 매겼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나 과세 근거가 아직 없다. 기획재정부가 내년도 세법 개정안에 암호화폐 과세안을 포함하기로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다. 빗썸 측이 ‘부당과세’라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국세청이 조세조약을 근거로 외국인만을 과세 대상으로 삼은 것도 논란거리다. 외국인의 경우 조세조약에 따라 명시되지 않은 모든 소득에 대해 과세할 수 있다. 반면 내국인의 경우 암호화폐 거래이익은 소득세법에 포함되지 않아 세금을 매길 수 없다. 국세청은 빗썸에 세금을 부과하면서 비거주자(외국인)에게 ‘소득을 지급하는 자’에게 원천징수를 한다는 논리를 적용했다. 하지만 암호화폐 거래를 대행하고 수수료를 받는 거래소가 원천징수 의무자에 해당하는지 의문이다. 실제 거래 이익이 나지 않고 손해를 본 투자자도 있는데, 출금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국세청이 과세를 결정한 것은 소득 발생 시점 이후 5년이 지나면 과세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법적 근거가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일단 때리고 보자’는 식으로 세금을 부과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명확한 과세기준과 법적 근거에 따라야 한다. 과세체계도 마련하지 않고 세금부터 부과하는 것은 행정편의주의로 비칠 수 있다. 정부는 하루빨리 법 제도를 정비해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흡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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