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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결핵 앓다 26세 대학 입학
최씨는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했다. 대입 검정고시를 거치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1977년 건국대 법대에 진학했고 졸업한 지 2년 후인 1984년 제28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서울시를 거쳐 국가정보원에서 20년 이상 일했고 1급 관리관인 실장까지 올랐다. 국정원 재직 당시 남북적십자회담 대표로 참여했다. 이후 한국중부발전과 국가안보전략원 등에서 이사로 근무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쉽게 이뤄낸 적이 없었다. 그는 경남 통영에서 4남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지만 다섯 남매 중 유일하게 부산 동아고로 ‘유학’을 갔다.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하지만 대학 진학을 코앞에 둔 3학년 2학기에 폐결핵에 걸렸다. 병이 낫지 않아 자퇴를 했고 3년을 앓았다. 이후 대입 검정고시를 치르고, 군대를 다녀온 뒤 대학에 입학했을 때 그는 26세였다.
법대를 나왔지만 사법고시가 아니라 행정고시를 본 것도 현실 때문이었다. “법조인이 되고 싶었지만 사시는 수험 준비 기간이 긴데 학비를 겨우 내는 상황에서 빨리 취직하는 게 중요했다”고 그는 말했다. 쉽지 않았지만 매 순간 도전하며 살아온 경험은 최씨에게 뼈와 살이 됐다. 퇴직 후 감정평가사 시험에 뛰어들 용기는 고난을 이기며 공부했던 젊은 시절에서 나왔다는 설명이다.
독서실에서 하루 12시간씩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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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어진 6년간의 수험 생활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토익 점수는 부족했고 보고서에 익숙해진 눈으로 긴 지문을 읽기는 힘들었다. 건강도 다시 발목을 잡았다. 그는 수험 생활 중 패혈증에 걸려 8개월을 앓았다. 의사는 치사율이 50%라고 했다. 가족과 친구들은 “공부를 그만두라”고 말렸다.
그래도 최씨는 “포기할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하루 12시간을 서울 신림동 독서실에서 공부했다. 이후에는 집 근처 시립도서관에 갔다. 똑같은 문제집을 세 번 넘게 풀며 달달 외웠다. 과락 두 번, 근소한 점수 차로 떨어진 세 번의 도전 끝에 그는 2019년 감정평가사 시험 합격자 181명에 이름을 올렸다.
오케스트라 단원에 도전
요즘 최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희망 전도사’가 됐다. 최고령 감정평가사 시험 합격자가 된 비결을 묻는 지인들의 연락이 쇄도하고 있다. 최씨는 “‘65세는 하던 일을 접는 나이’인 줄 알았던 친구들이 나를 보며 생각이 바뀌는 모양”이라며 “국정원 때 동기는 최근 법무사 준비에 들어갔고, 변호사를 하는 대학 동기들도 법정 등 현장에 다시 나간다”고 말했다.
최씨는 최근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배우고 있는 첼로 실력을 키워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입단하는 것이다. 어린이병원 등을 다니며 재능기부를 하는 게 목표다. 꿈을 이루면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세워 또 도전할 생각이다.
최씨는 “공부가 아니어도 좋으니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끈기 있게 도전한다면 누구나 퇴직하고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며 “수십 년 일했던 ‘가락’이 있는데 못할 게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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