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문화살롱] 베토벤의 미완 교향곡 AI가 완성?

입력 2020-01-02 18:43   수정 2020-01-03 00:17

올해는 ‘악성(樂聖: 음악의 성자)’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 탄생 250주년이다. 그의 고향인 독일 본에서만 300여 개의 기념행사가 열리는 등 전 세계가 1년 내내 베토벤 선율에 젖어들 전망이다. 한국에서도 그리스 명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의 내한공연 등이 연말까지 이어진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인공지능(AI)으로 베토벤의 미완성 교향곡 10번을 완성하는 프로젝트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음악학자들과 프로그래머들이 독일 통신업체 도이치텔레콤의 지원으로 머신러닝(기계학습)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10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있다. 오는 4월에는 본에서 오케스트라로 정식 연주할 계획이다.

탄생 250년 기념 올해 연주 예정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은 단편적인 스케치 수준의 관현악 악보만 남아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작업하기 전인 57세에 타계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베토벤 전문가인 영국 음악학자 베리 쿠퍼가 1983년 스케치 악보들을 발견한 뒤 5년에 걸쳐 1악장을 완성한 바 있다. 1988년에 연주되기도 했다.

AI 작업은 이와 별개다. 베토벤의 작품으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연구팀은 “베토벤의 모든 악보를 숙지한 AI가 몇 달간의 보완 작업을 거쳐 곧 최종 악보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I를 활용한 작곡은 그동안에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부자연스럽다”는 지적과 함께 예술과 기술 사이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예술의 본질에 관한 질문과 맞닿아 있다. 베토벤은 다른 음악가들과 달리 청력장애라는 특수한 조건까지 지녔다. 그는 28세 때인 1798년부터 청각장애를 앓았고, 44세에는 청력을 완전히 잃었다. 1824년 9번 교향곡 초연 때 기립박수 소리를 듣지 못해 멍하게 서 있기까지 했다.

그는 피아노 음을 감지하려고 공명판에 막대기를 대고 입에 문 채 진동을 턱으로 감지했다. 창작 과정도 음표 하나를 그리는 데 20분이 걸릴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는 이런 아픔과 고민을 수많은 메모와 스케치로 남겼다. 기록을 보면 그가 모든 소재를 마지막 하나까지 선율에 담아내려 무진 애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각상실 등 아픔까지 담아낼까

4년에 걸쳐 완성한 ‘장엄 미사’의 악보에는 “마음으로부터 나와 마음으로 전달돼야 한다. 신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신은 결코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메모가 적혀 있다. 그는 청력 상실로 인한 세속 세계와의 단절을 ‘천상의 소리’를 듣는 기회로 삼았다. 괴테와 실러 등 대문호들의 작품을 읽으며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그러면서 기존의 형식과 개념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이 때문에 작업 속도는 다른 작곡가보다 느렸다. 그의 음악에는 이런 고뇌와 인생 역정이 담겨 있다. 그가 시공을 초월해 클래식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것은 인간 본성의 단면들이 음악 속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음악가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청각장애를 딛고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명곡들을 창작한 그는 불굴의 의지와 인간승리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음악계는 이런 그의 내면까지 AI가 다 포착하고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궁금해한다. 베토벤이 AI 기술로 ‘복원’한 미완성 교향곡을 듣는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청각장애 화가’ 운보 김기창은 폭포를 보며 “얼마나 좋을까, 저 아름다운 신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이라고 했는데, 베토벤이 2세기 저편의 과거에서 걸어 나와서는 뭐라고 할까. 아무리 뛰어난 기술로 완성한 예술이라도 이를 듣고 눈물 흘리는 감동은 결국 인간의 영역일 텐데….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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