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탄핵을 은근히 바라는 사람은 태평양 건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일 것이다. 그렇게도 중국을 괴롭히던 트럼프가 하차하면 시 주석에게는 정말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설사 상원에서 탄핵을 면하더라도 정치적 타격 때문에 연임은 못할 것이란 기대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시 주석의 이런 ‘차이나 드림’은 그야말로 허황된 꿈이다.
트럼프는 ‘클린턴형(型) 탄핵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1998년 탄핵 스캔들 와중에도 클린턴 대통령의 지지율은 67%였다. 2001년 퇴임할 때 지지율도 그 어느 대통령보다 높은 65%였다. 야당인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클린턴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것은 당시 ‘정보기술(IT)붐’으로 미국 경제가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지지율도 하원의 탄핵 소추 후 되레 올라가고 있다. 작년 12월 갤럽 조사에서 트럼프는 ‘가장 존경받는 남성’ 1위로 선정됐다. 보수층이 결집했기 때문이다. 경제도 작년 말 나스닥지수가 ‘산타 랠리’ 덕에 9000선을 뛰어넘었다. 트럼프 취임 이후 3년간 S&P500지수는 50% 이상 뛰었다. 전임자들 평균 상승폭 23%의 두 배 이상이다. 이런 호황은 오는 11월 대선 때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아메리칸’은 지갑을 두둑하게 해주는 지도자를 절대 버리지 않는다. 그간 러시아 스캔들로 끊임없이 시달리던 트럼프가 이번 탄핵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면 베이징 압박 수위를 한 단계 높일 것이다.
작년 12월 미·중 관세협상이 타결된 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다음 단계 협상 과제는 “중국의 체제 변화”라고 못 박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오는 15일 백악관에서 1단계 무역합의문에 서명할 예정인데, 2단계 협상은 ‘정부보조금 같은 체제 갈등’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1980년대 일본 경제가 미국을 추격할 때도 이런 ‘체제 갈등’이 10년 이상 이어졌다. 미국이 중국의 국가발전 시스템에 칼을 대기로 한 이상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이 미·중 힘겨루기는 단순한 경제전쟁을 넘어 패권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금 시 주석은 중국몽(中國夢)을 내세워 경제적 도전을 할 뿐만 아니라 군사몽(軍事夢)으로 군사 패권국까지 꿈꾸고 있다. 특히 “태평양을 양분하자”며 해군력을 무서운 속도로 증강하고 있다. 항공모함 여섯 척 보유를 목표로 벌써 두 척의 항모를 실전 배치하고 네 번째 항모 건조 계획까지 세웠다.
1941년 일본 제국의 항모 여섯 척에 진주만이 쑥대밭이 됐던 미국엔 ‘항모 6척 트라우마’가 있다. 만약 중국이 항모 여섯 척을 갖게 되면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남중국해에서 미 해군을 몰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 해안까지 위협할 수 있다. 2차 대전 참전을 꺼리던 미국이 전쟁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가 미국 동·서부 해안이 독일과 일본의 해군력에 위협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워싱턴은 중국의 군사몽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2020년 미·중 무역전쟁은 ‘체제 갈등형 패권전쟁’으로 더욱 격렬해질 것이다. 당연히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두 나라의 압력도 거세질 게 틀림없다. 한국은 주요 무역·투자 파트너인 두 나라 사이에서 경제적 선택으로 힘들어질 텐데, 진짜 문제는 안보다. 만약 2050년 중국이 세계 1위 군사대국이 되면 우리 안보는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중국이 군사 패권국이 된다는 것은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을 밀어낼 군사력을 갖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과거처럼 한반도가 다시 ‘위대한(?) 중화제국’의 그늘 아래로 들어가게 된다.
시 주석의 중국몽, 군사몽과 한국의 미래는 제로섬 게임이다. 솔직히 말하면 미국과의 무역·패권전쟁에서 중국이 물러나서 2등 국가로 만족하는 것이 우리 국익에 부합한다. 중국과 우리는 절대 공동운명체가 될 수 없다. 초강대국 간 패권전쟁에서 줄을 잘못 서 망한 나라가 한둘이 아니라는 역사적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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