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달라진 신년회 풍경처럼…

입력 2020-01-03 18:15   수정 2020-01-04 00:15

“우리 회사가 젊어졌어요.” 주요 기업 직원들은 올 들어 달라진 신년회 모습을 보면서 “오, 예!”를 외쳤다. 딱딱한 시무식이 짧은 프레젠테이션으로 바뀌고, 최고경영자(CEO)의 신년사가 영상이나 이메일로 대체되는 등 분위기가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획일적인 행사와 달리 회사의 경영철학과 개성이 잘 드러난 무대였다” “재계의 세대교체가 실감난다”는 반응도 나왔다.

현대자동차그룹 신년회는 의례적인 형식이나 정해진 식순 없이 자유로운 ‘새해맞이 모임’ 성격으로 10여 분 만에 끝났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프레젠테이션과 ‘떡국 덕담’에 직원들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시무식을 모바일로 생중계해 임직원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SK그룹은 ‘회장님 신년사’를 없애고 신입사원과 고객들을 무대로 모셨다. 최태원 회장은 무대 아래에서 입 대신 귀를 열었다. 또 사옥 인근 식당 종사자와 기관투자가, 청년 구직자, SK에 근무하는 임직원 자녀, 워킹맘의 어머니 목소리를 영상으로 들었다.

시무식 자체를 아예 없앤 곳도 있다. LG그룹은 강당 시무식 대신 경영진의 메시지가 담긴 영상을 전 세계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보냈다. CJ그룹은 사내 방송으로 전 세계 임직원과 신년 인사를 나눴다. GS그룹은 신년 모임을 스탠딩 토크 방식으로 진행했다. 기업 관계자들은 “이런 변화의 흐름이 경영진과 사원들의 세대교체, 조직 문화 개선 등과 맞물려 기존 격식과 틀의 ‘창조적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년회 분위기는 자유로워졌지만 CEO들의 새해 메시지에는 절박한 마음이 배어났다. 핵심 키워드로 ‘위기’ ‘생존’ ‘변화’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했다. 경영학계는 “국내외 경기부진으로 작년보다 경영환경이 어려워질 것을 예감한 기업들의 안팎 고민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고 분석했다.

직원들은 이런 변화에 공감하면서 “확 달라진 신년회만큼 성과가 늘어나고, 고객 행복과 직원 만족이 동시에 이뤄지면 더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반응 중에는 “기업들의 변신 몸부림에 비해 정부의 경제정책과 신년회 풍경은 달라진 게 없어 유감”이라는 따끔한 내용도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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