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환 이사장 "빈손으로 간다는 뜻의 공수거 실천할 것"

입력 2020-01-05 17:21   수정 2020-01-06 03:15

“‘돈을 버는 데는 천사처럼 할 수 없어도 돈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하겠다’는 게 제 오랜 철학입니다.”

‘한국의 기부왕’으로 불리는 이종환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이사장(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97·사진)이 재단 설립 20주년을 맞아 밝힌 기부 철학이다.

이 이사장은 2000년 사재 1조원을 기부해 아시아 최대 장학재단인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을 세웠다. 지금까지 1만여 명에게 약 2300억원의 장학금을 줬다. ‘후손에게 한 광주리의 황금을 물려주기보다 경전 한 권을 더 읽히도록 하라’는 가훈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그는 “장학생 출신 중 세계 유명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만 600명이 넘는다”며 “앞으로 10년쯤 지나면 노벨상 후보자가 나올 것”이라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100세를 눈앞에 두고 있는 그는 지난해 3년 만에 재단 이사장으로 복귀했다. 재단 기반을 확고하게 다지기 위해서다. “전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났다면 지금은 7시에 일어나는 것 정도를 빼고는 젊을 때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혼자 가방을 들고 지방 공장이나 해외 출장을 가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죠.”

이 이사장은 “이웃들과 손을 잡고 ‘빈손으로 간다’는 의미의 공수거(空手去) 자세를 실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세계 1등 인재를 키우고 인류 공영을 위하는 일에 모든 것을 던지기로 결단하니 비로소 걱정이 사라지고 더 행복해졌다”며 “주는 것 이상 행복한 게 없다는 말을 남긴 자선왕 록펠러의 심정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관정재단은 2022년부터 세계 학자들을 대상으로 생명과학상, 수리물리학상, 화학상, 응용공학상, 인문사회과학상 5개 분야에 15억원씩 총 75억원의 상금을 주는 가칭 ‘세계관정과학상’을 창설할 계획이다. 이 이사장은 “올 상반기에 관정과학상위원회를 발족하고 하반기 모든 실무 준비를 끝내면 내년에 추천을 받고 2022년 첫 시상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923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이 이사장은 마산중학교와 일본 메이지대 경상학과에서 공부한 뒤 강제 징집을 당하는 등 고난을 겪었다. 1959년 삼영화학공업사를 창업해 일본 업체들과 오랜 기간 치열하게 경쟁하며 기업가 정신을 길렀다. 이런 점에서 한·일 관계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전략적으로 보더라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의미의 ‘도광양회’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경자년 새해를 맞아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격려의 메시지로 인터뷰를 마쳤다. “자주 듣던 소리일지 모르나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라. 용기를 갖고 계속 도전해 나가라’는 말을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미래를 충실히 준비하다 보면 길이 열리고 의외로 돕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내일은 청년 여러분의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지니기를 바랍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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