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2015년 말 일본 정부와 ‘최종적 및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며 위안부 문제를 구두로 합의했다. 당시 정부 합의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일본 아베 정부가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하며 책임을 통감’하고,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에 ‘일본 정부 예산으로 10억엔(약 100억원)을 거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합의의 성격이 조약이 아니라는 게 이번 헌재 각하결정의 핵심요지다. 법적 효력이 없는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니 ‘국민의 법적 지위가 영향을 받지 않기에’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우리 정부가 이에 구속될 이유가 없으니 일본 측과 다시 합의하게 되면, 위안부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게 된다는 취지가 깔려있다.
그러나 국가 간 구두합의도 국제법적 구속을 받길 의도했다면 조약이다. 1992년 덴마크와 핀란드 총리 간 전화통화를 통해 ‘국제 해협에서의 항행 문제’를 해결한 합의를 조약으로 인정한 국제사법재판소 판례도 있다. 중요한 건 한·일 위안부문제 합의 시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으로 양측이 합리적으로 이해했는지 여부다.
한·일 외교장관 공동 기자회견 형식으로 발표된 핵심 합의 내용에는 ‘일본 측의 사죄 및 10억엔 출연’과 위안부 배상문제의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 간의 맞교환 관계가 명시돼 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핵심내용(‘일측의 5억달러 제공으로 인해 양국 및 국민 간 모든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과 유사한 구조다.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는 합의는 성질상 최종적이지도 못하고 불가역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단순한 외교적 합의를 하면서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반(反)인권적인 ‘조직적 성노예’ 문제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피해자들의 동의도 받지 않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일측과 합의한 정무적 판단은 비난받을 만하다. 그렇더라도 양국 정부 이름으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합의한 이상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 효력을 부인하는 것은 문제다. 전임 정권이 나름 고심 끝에 체결한 국제적 약속을 내부 적폐청산 차원에서 대외적으로까지 부인하게 되면 앞으로 국제관계를 맺는 데 스스로 신뢰할 수 없는 나라가 돼버리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단순한 사법기관이 아니다. 한 나라의 헌정질서를 국제사회 속에서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다. 피해자 인권 구제와 적폐청산 차원에서만 한·일 합의를 바라보는 것은 헌재의 임무가 아니다. 날뛰는 야생마 같은 정권을 굳건한 울타리 안에 가두는 것도 헌재의 임무이고, 울타리 밖 상황을 주시해 울타리를 지킴으로써 외세로부터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도 임무다. 글로벌 한국의 헌정질서는 국제사회와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헌재의 올바른 결정은 무엇이어야 했나. 위안부 합의의 구속력은 인정하면서도 그 합의 내용이 ‘피해자의 기본권을 소멸’시킨 것이 아니라, 양국 간 현안을 ‘정부 차원에서 해결’한 것임에 주목했어야 했다. 아직 살아있는 개인의 청구권을 배상해야 하는 문제 해결의 책임이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 정부로 이전됐음을 인정했어야 했다. 그래서 피해자들의 ‘청구권 처분(소멸)’ 주장은 근거 없다고 결정했어야 했다.
헌재 결정처럼 한·일 합의 자체의 구속력만 부정하게 되면, 우리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정식으로 폐기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사실상 부인하고 ‘일본 때리기’를 가속화하는 비이성적 정책을 옹호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반인권적 범죄행위를 저지른 일본 측에도 오히려 할 말이 있게 해줌으로써, 위안부 피해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참회 행동을 이끌어낼 길도 오히려 더 멀어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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