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배달의 민족’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운영하다가 경쟁사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 4조7500억원 가치를 인정받고 회사를 넘긴 우아한형제들은 지금까지 어디서 얼마나 투자를 받았을까. 이 회사에 투자했던 벤처캐피털(VC)인 알토스벤처스는 어떤 곳이고 지금까지 한국에서 어디에 투자해 왔을까. 더브이씨는 이와 관련해 외부에 공개된 적 있는 정보를 모두 검색해 구체적인 수치와 그래프로 가공해 제공한다.
이 사이트를 만든 변재극 더브이씨 대표(28)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젊었고, 자유분방해 보였고, 자신의 일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머리를 길러서 묶었는데 짧게 깎아서 그때보단 좀 더 사람 같아 보인다”며 웃었다.
억지로 대학을 졸업하는 것보다 창업해서 일을 하는 즐거움이 커서 대학은 그만뒀다고 했다. 대전 출신인 그는 “학점을 받기 위해 억지로 강의실에 나가는 것보다 서울에 올라가 스타트업 업계 사람들을 만나는 게 훨씬 즐거웠다”고 했다. “고교 때도 부모님 몰래 대형 게임 커뮤니티 운영 서버를 돌리느라고 장롱 속에 컴퓨터를 뒀다가 집에 불을 낼 뻔 했거든요. 막내라서 자유분방하게 살아왔죠.”
처음부터 스타트업 투자 DB를 만들겠다고 달려든 것은 아니었다. 앱을 개발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거나 창업 동아리 활동 등을 하던 그는 처음엔 캄보디아 여행 경험을 기반으로 여행 가이드 앱을 만들었다. 이후 문화창업플래너 양성 프로그램을 이수하다가 스타트업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펀드 정보를 모아서 제공하자는 아이디어에 닿았다. 2016년 더브이씨의 시작이었다.
“많은 스타트업 사람들은 투자자를 만날 때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협상에서 불리해지지 않을지 걱정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만나기로 한 투자자가 한번에 얼마 정도를 투자하는지, 지금 자금모집이 초기 단계인지 거의 끝났는지, 기존 포트폴리오가 내 회사와 겹치는지 등을 알면 협상이 훨씬 순조로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사업을 시작하는 초짜들로선 이런 정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죠. 해외엔 크런치베이스나 CB인사이트 등 이런 정보를 제공하는 대형 서비스 업체가 여럿 있는데, 한국엔 왜 없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변 대표와 개발자를 포함해 3명이 있었다. 하지만 당장 돈이 되지 않는 탓에 결국 변 대표 하나만 남았다. 그는 스스로 어느 정도 코딩과 웹사이트 운영을 할 수 있지만, 개발전문가는 아니다. 대단히 꼼꼼하고 성실하다는 것이 그의 최대 강점이다. “3년 전 이 일을 시작한 후로 거의 매일 스타트업에 관한 기사와 각 회사별 자료 등을 검색하고 적절하게 입력해서 DB를 구축했다”고 변 대표는 설명했다.
엄청난 기술력을 요구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돈이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서 묵묵하게 이 작업에 매달린 사람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 변 대표 하나 뿐이었다. 창업 후 6개월 만에 외부에서 반응이 왔다. 서울시와 경기도 등에서 스타트업 관련 데이터를 가공해 자료를 만들어 달라는 용역을 수주했다. 데이터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분명한 증거였다.
지금까지 입력한 스타트업은 3500여곳, 투자사 정보 등을 포함하면 총 5000여개 회사에 관한 수년간의 기록이 더브이씨에 보관돼 있다. DB가 커지면서 집적 효과가 나타났다. VC나 스타트업에서 투자 정보를 먼저 보내주면서 기록해 달라고 하는 일이 늘었다. 최근에는 메일이나 채팅창을 통해 이러한 요청에 응하는 것도 그의 주요 업무다. “외부에서 보면 여러 명이 일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메일에 대답하는 것도, 채팅에 응하는 것도, 전화를 받는 것도 모두 변재극 한 명”이라며 그는 웃었다.
그의 DB 작업에 투자하겠다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사업 초기 액셀러레이터 4곳에서 소액을 투자받은 데 이어 최근에는 국내 VC 블루포인트파트너스에서도 투자를 유치했다. 변 대표는 “다른 곳에 취업했던 개발자를 다시 데려오려고 준비하고 있다”며 “한층 더 업그레이드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변 대표는 ”해외에서는 크런치베이스와 같이 투자 DB가 잘 갖춰진 플랫폼이 있고 그런 플랫폼이 돈이 되는 것이 분명했지만, 한국은 사실 돈이 될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많지 않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한 국가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결정하는 인프라가 너무나 부족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내가 기여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최근 유사한 서비스를 시도하는 사이트가 등장했다는 소식도 있었지만, 변 대표의 표정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경쟁업체가 생기더라도 내가 제일 잘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내년 목표는 ‘자동화’다. ‘인공지능(AI) 변재극’을 만들어서 DB 입력과 문의 응대 등을 맡기고, DB 집적 속도를 확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더브이씨를 통해 구축한 DB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을 시도해 볼 예정이다. 그는 ”초기에는 직접 VC가 되는 것이 목표였고, 지금은 스타트업들이 유상증자나 주주총회 등 자금조달 과정을 관리하는 도구를 개발하는 사업이나 자금조달 방법을 컨설팅하는 사업 등을 구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유료화 모델도 고려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너무 작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계속 작을까?’라고 묻고 싶어요. 중국의 성장세 등을 감안하면 같은 아시아 경제권에 속한 우리 역시 충분히 더 파이를 키울 여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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