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자동차 내수 시장에서 현대자동차의 그랜저와 포터가 각각 1·3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랜저는 현대차의 플래그십 모델이고, 포터는 대표적인 서민 차량이라는 점에서 시장이 '고급세단 vs 영업트럭'으로 양분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그랜저는 지난해 내수 시장에서 10만3349대가 팔리면서 국내 판매 순위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현대차의 쏘나타로 10만3대가 판매됐으며 소형 트럭인 포터가 9만8525대로 3위에 올랐다.
이로써 그랜저는 2017년 13만2080대, 2018년 11만3101대에 이어 3년 연속 10만대 클럽에 가입했다. 플래그십 모델로는 이례적인 기록을 썼다. 지난해 11월 6세대 그랜저의 페이스리프트(부분 변경) 모델인 더 뉴 그랜저 출시로 신차 효과가 나타났다.
더 뉴 그랜저는 지난해 11월4일부터 18일까지 영업일 기준 11일 간 진행된 사전 계약에서 총 3만2179대의 계약을 달성했다. 이는 6세대 그랜저가 가지고 있던 국내 사전계약 최다 실적을 갈아치운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그랜저보다 3위 포터의 판매량 증가에 더 주목하고 있다. 포터는 2016년 9만6950대가 판매되고 처음으로 내수 판매 1위에 올랐고 2017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10만대 판매를 돌파한 데 이어 2018년에는 9만7995대가 판매됐다.
지난해 순위는 3위였지만 2위 쏘나타와의 격차가 1478대에 불과했다. 포터의 전체적인 판매량도 2018년 9만7995대에서 지난해 9만8525대로 약 1% 증가했다. 지난해 국내 5개 완성차 업체의 전체 판매량이 총 792만812대로 전년보다 3.8% 감소한 것과는 다른 추세다.
연식 변경 외 신모델 출시가 없었다는 점과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서민들이 소형 트럭 구매 시 신차보다 중고차를 먼저 고려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포터의 판매량 증가는 경기 불황과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범위를 넓혀 포터와 차체를 공유하는 기아자동차 소형 트럭 봉고까지 살펴보면 근거는 더욱 뚜렷해진다. 봉고는 2018년 4만4939대에서 지난해 5만9017대로 판매량이 무려 31%나 증가했다. 포터보다 가격이 더 저렴한 탓이다. 포터는 가격이 1664만원에서 2276만원에, 봉고는 1529원에서 2219만원에 책정돼 있다.
보통 소형 트럭의 판매량이 증가할수록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 전체 자동차 판매량은 줄어드는데 포터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을 가리켜 '포터 지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제 불황의 정도를 파악하는 척도로 사용되는 것이다.
업계는 베이비부머의 명예퇴직 시기가 도래하고 경기 불황으로 조기 퇴직자가 늘어난 것이 포터 판매량의 우상향 곡선을 이끈 요인으로 보고 있다. 취업이 어려운 20~30대 젊은 창업자들이 소규모 창업에 뛰어들면서 포터 수요는 당분간 견고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전반적으로 자동차 시장의 수요는 고급화와 트럭 등 운행 목적이 뚜렷한 차량으로 나뉘고 추세"라며 "포터는 생계형으로 쓰기 위한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수요가 견고하다는 것은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1977년 처음 출시된 포터는 벌써 40년의 역사를 가진 대표적인 장수 차량이지만 화물차라는 이유로 일반 승용차에 비해 편의 사양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었다.
최근에는 포터의 차주가 늘어나는 만큼 온라인 동호회를 중심으로 편의 사양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현대차는 가장 최근에 출시한 포터인 '2020년형 포터2'부터 '전방충돌방지보조(FCA)'와 '차로이탈경고(LDW)' 등의 운전보조장치를 선택 사양으로 갖췄다.
또한 주간주행등을 새로 달아 상대편 운전자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했으며, 질소산화물을 줄이는 요소수 시스템도 새로 적용해 유럽의 강화된 배출가스 규제인 '유로6' 기준을 충족시켰다. 복합연비는 리터당 8.9~9.9㎞로 기존보다 3.1% 개선됐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고 포터 구매자가 늘수록 사양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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