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양성자과학연구단(한국원자력연구원 소속)은 지난달 100 메가전자볼트(MeV), 20 밀리암페어(mA)급 양성자가속기가 이같은 이정표를 달성했다고 8일 발표했다.
양성자가속기는 수소 원자에서 전자를 떼어낸 양성자를 빠르게 가속, 다른 물질에 충돌시켜 새로운 원소를 만드는 거대과학장치다. 2012년 말,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대용량 양성자가속기가 원자력연 독자기술로 완성됐다.
경주 가속기는 초당 무려 1.2 경(조의 1만 배)개의 양성자를 연구자들에게 제공한다. 이들 양성자를 초당 13만㎞의 속도로 다른 물질의 원자핵에 발사한다. 플라스틱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등 재료의 물성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도 있고, 암 진단에 사용되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생산해내기도 한다.
반도체 소자 오류 및 손상 방지에도 활용된다. 태양에서 생성돼 지구까지 도달하는 우주방사선 형태의 수소 양성자가 반도체 성능을 저하시키거나 고장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한 실험을 하는데 양성자가속기를 사용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생산기업은 이같은 실험을 국내외 협력업체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
경주 양성자가속기는 작년까지 생명공학, 신소재, 반도체 등 총 700여개 연구과제와 2000여명의 연구자를 지원했다. 대구가톨릭대 김종기 교수팀은 투과성 양성자로 알츠하이머(치매)에 걸린 뇌의 신경독성을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탁희 서울대 교수는 차세대 반도체 소자의 전도 특성을 제어하는 기술을, 광주과학기술원(GIST) 조지영 교수는 열전소재의 성질을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양성자과학연구단은 반도체 소자 오류 방지 기술 향상을 위해 양성자가속기 에너지를 1기가전자볼트(GeV)로 확장하는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연구단 관계자는 "현재 100MeV 에너지는 반도체 분석 실험에 충분치 않아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경주 가속기로 베타테스트를 거친 후 해외 양성자가속기 운영기관에서 다시 인증을 받고 있다"며 "국내 반도체 제품의 신뢰성 확보를 해외 기관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가속기 에너지 확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