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업들이 '신용등급 쇼핑'을 한다고?

입력 2020-01-10 17:25   수정 2020-01-10 17:27

[01월 10일(17:25) '모바일한경'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모바일한경 기사 더보기 ▶



(김은정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신용등급 스플릿(rating split)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특정 기업의 신용등급이나 등급전망이 신용평가회사마다 다를 때 쓰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신용평가회사 간 신용등급 및 등급전망 불일치라는 뜻이죠.

'각기 다른 신용평가회사가 저마다 평가 논리로 등급을 매기는 데 서로 다른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요?'라고 물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기업의 신용등급이 신용평가회사마다 들쭉날쭉 한다면 투자자들이 기업의 신용도를 신뢰하고 판단하기 어렵겠죠.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할 때 두 곳 이상의 신용평가회사에서 신용등급을 평가 받아야 하고, 두 곳 이상의 신용등급이 일치할 때 유효한 것으로 인정받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신용등급 스플릿이 생기는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유는 다양하겠지요. 기업이 속한 산업 전망에 좀 더 평가의 중심을 두느냐, 기업 자체의 재무상태 변화에 초점을 맞추느냐 등이 달랐을 수 있죠.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사건이나 변화를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보느냐, 당장 미칠 영향에 주목하느냐 등도 다를 수 있고요.

종합해보자면 신용평가회사가 얼마나 보수적인 관점에서 기업을 보느냐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겁니다. 긍정적인 이슈는 최대한 빨리 평가에 반영하고 부정적인 이슈는 최대한 늦게 반영했을 경우 시장에서 '기업 친화적이다' '수익 때문에 평가 철학을 지키지 않는다' 등의 지적을 받기도 합니다. 결국 그 신용평가회사의 시장 신뢰는 추락하는 것이고요.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연합자산관리(AA)는 스플릿이 발생한 주요 기업 중 하나입니다.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는 신용등급 하향 조정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의 부정적 등급전망을 달아 놨고요. 나이스신용평가는 신용등급의 조정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의 안정적 등급전망을 부여한 상태입니다.

연합자산관리는 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수익성이 꽤 나빠졌습니다. 자본확충이 시급한 데 출자 은행들은 아직 시큰둥한 상황이죠. 물론 연합자산관리는 꾸준히 출자 은행들에 출자를 요청하고 있고요.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는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긍정적인 가능성보다 현재 재무 및 사업 상태에 집중해 등급전망을 매겼습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연합자산관리가 올해 지분 매각 등을 통해 투자자금이 회수될 전망이고, 유상증자가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 안정적 등급전망을 부여한 것이고요.

나이스신용평가가 연합자산관리의 발생 가능한 긍정적인 요인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한 셈입니다. 상대적으로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는 보수적인 관점을 견지한 것이고요.

이 밖에 동원시스템즈의 경우에도 나이스신용평가는 A+를 한국신용평가는 A를 부여하고 있어 스플릿이 발생했습니다. 대상도 대표적인 신용등급 스플릿 기업입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AA-,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는 A+를 매기고 있습니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예전에 비해 등급 쇼핑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금융당국의 관리감독도 강화됐고, 신용평가회사 역시 내부적으로 자정노력을 했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어느 신용평가회사가 등급 따기 유리하다'는 식의 말들이 돕니다. 기업들이 더 잘 알아요.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3곳 중 2곳만 선택해 등급을 받으면 되니 어찌 보면 '기업 우위' 구조잖아요." (끝)/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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