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권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거래 단위가 커지면서 최고 권종 액면 단위를 높이거나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화폐 단위 축소)’을 단행하자는 요구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 부정부패가 심해지고 대안 화폐 혹은 가상화폐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최고 권종을 아예 없애자는 폐지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한 나라 국민의 화폐생활에서 비중과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교환 수단, 가치 저장, 회계 단위 등 최고 권종이 화폐의 3대 기능을 담당하는 역할도 절대적이다. 한마디로 최고 권종이 실물경제에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최고 권종의 체감온도로 경기를 파악해야 한다는 시각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보이는 증강현실 시대를 맞아 심리적인 요인과 네트워킹 효과가 커지는 경제 여건에서는 최고 권종의 체감온도로 경기를 진단하고 예측하는 기법은 의미가 크다. 심리학, 인문학 등을 접목하는 행동주의 경제학에서는 이 기법을 이론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예측력 저하에 고민하는 전망기관과 금융회사가 참고할 만한 대목이다.
최고 권종의 체감온도는 한 나라 경제의 활력지표와 직결된다. 최고 권종의 체감온도가 따뜻하게 느껴지면 돈이 잘 돌고 그 기간도 길어져 통화 유통속도와 통화승수가 높아지고 그 반대의 경우 신용경색 현상이 나타나면서 떨어지기 때문이다. 예금 회전율 등과 같은 다른 경제 활력지표도 마찬가지다.
금융위기 직후처럼 경제 시스템이 무너지고 금융과 실물경제가 따로 놀아 통화정책 전달경로(transmission mechanism: 통화량 확대→금리 하락→총수요 증가→경기 회복)가 작동하지 않을 때는 뜨거운 마중물부터 넣어야 한다.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추진했던 제로 금리, 양적완화와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이에 해당한다.
엄동설한이 지나 봄날에 새싹(green shoot)이 돋으면 잘 키워야 가을에 풍성한 열매(golden goal)를 맺을 수 있다. 본대가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전지(剪枝)작업을 해주고 생육 상태에 맞춰 거름 양도 조절해줘야 한다. 본대를 자르거나 거름을 너무 빨리 걷거나 너무 늦게까지 줄 경우 어렵게 자란 새싹이 시든 잡초(yellow weeds)로 변해 죽는다.
한국은 최고 권종인 5만원에서 느껴지는 체감온도가 너무 차갑다. 통계를 작성한 이후 통화 유통속도, 통화승수, 예금 회전율 등과 같은 모든 한국 경제 활력지표가 가장 낮은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금융과 실물이 따로 놀아 돈이 금융권에서만 맴도는 이분법 경제의 전형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얼어붙은 5만원권의 체감온도를 높이기 위해 한국판 양적완화와 같은 뜨거운 마중물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보다 경제발전 단계가 높은 미국에 비해 기준금리가 낮고 시중 부동자금이 사상 최대 규모인 점을 감안하면 ‘뜨거운 마중물의 문제’가 아니라 얼어붙은 5만원권을 잘 돌아가게 하는 ‘경제활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경제활력을 높여 5만원권의 체감온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어떤 자금의 통로를 선택하느냐가 중요하다. 보신주의로 확실한 담보를 요구하는 은행을 선택할 경우 5만원의 체감온도는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2018년 11월 말 시중 부동자금을 흡수할 목적으로 단행한 금리 인상 조치가 실물경기를 더 침체시키고 부동산 투기를 부추긴 것이 대표적인 예다.
금융과 실물 간을 연결하는 통로로 주식시장을 선택해야 한다. 증시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공급 면에서는 ‘친기업 정책’, 수요 면에서는 모험성과 창의성이 높은 분야에 5만원권을 비롯한 다양한 시중자금이 유입될 수 있도록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친증시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대주주 양도차익 과세는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정책이다.
증시로 유입되는 자금의 성격에 따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부터 안정권에 들어선 기업에까지 골고루 최고 권종이 들어갈 경우 주력 산업(혹은 기업)의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복원력(resilence)이 강한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이 확충된다. ‘골든 골’ 단계에 이르면 금융과 실물 간의 연계성이 강해져 5만원권은 따듯하게 느껴지고 스스로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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