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군 당국은 이날 이란 국영TV를 통해 “우크라이나 항공기가 사람의 실수로 격추됐다. 항공기가 이란혁명수비대(IRGC)의 주요 군사기지 근처로 방향을 틀자 (군이) 비행기를 적대적 표적으로 오인했다”고 발표했다. 이란군은 우크라이나 항공기를 미국의 크루즈 미사일로 오인했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지난 8일 사고 발생 후 수일간 이번 항공기 추락 사고의 원인이 기체 결함 탓이라고 주장해 왔다. 항공기를 제작한 보잉과 미국에 책임을 돌린 것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조사단이 이날 사고 현장에서 미사일 파편 등을 발견했다고 밝히는 등 전문가들이 격추 증거를 계속 제시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또 계속 부인하는 것은 미국과의 갈등 구도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란 지도자들은 일제히 사과문을 내고 책임자를 엄벌하겠다고 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사고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애도를 표한다”며 “군 참모진에 책임 규명을 위해 후속 조사를 하라고 명했다”는 성명을 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 등도 각각 사과문을 발표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와 캐나다에 전화로 공식 사과했다. 이번 사고로 인한 국적별 사망자는 이란 82명, 캐나다 57명, 우크라이나 11명, 스웨덴 10명, 아프가니스탄 4명, 독일과 영국 각각 3명 등이다.
이번 사고로 인해 이란 군부와 정부는 상당한 타격을 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 IRGC 대공사령관은 같은날 자국 방송을 통해 “이제 내 목은 머리카락보다 가늘어졌다”며 “책임을 인정하고 모든 처분을 달게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자데 사령관은 8일 이라크 내 미군 주둔 기지 공격을 주도한 인물이다.
이란 내에서도 정부에 등을 돌리는 시민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날 테헤란 시내에선 비행기 격추를 비판하는 반군부 시위가 열렸다. 일부 시민들은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시위대는 민간기 격추와 사실 은폐에 책임 있는 이들을 전부 해임·기소해야 한다며 추가 시위를 예고했다. 이런 가운데 롭 매케어 이란 주재 영국대사가 여객기 격추 사건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철야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이란 당국에 체포됐다가 석방돼 국제적 비난이 일었다.
AP통신은 “이란이 이번 비행기 추락 사고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일이 자국 내 반정부 여론에 불을 붙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에선 지난달 민생고와 미진한 경제정책 등을 비판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미국과의 대립으로 반미 여론이 결집하면서 자국 내 불만이 잠시 사그라들었지만 이번 사태로 다시 반정부 여론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한편 독일 알리안츠그룹은 12일 올해 국제 유가 전망치를 종전 배럴당 62달러에서 65.5달러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알리안츠그룹은 “미국과 이란 간 극심한 긴장이 수차례 되풀이될 경우 국제 유가가 일시적으로 배럴당 100달러 선까지 오를 수 있다”고 관측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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