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민항기가 추락했을 때 이란은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사흘 만에 “의도치 않은 실수”라며 격추 사실을 시인했다. ‘서방의 악의적 심리전’이라며 부인했던 이란은 왜 사실을 실토했을까. 미국 정찰위성의 동영상에 감청 자료까지 제시되자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보의 힘이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누군가 실수했을 수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말이다. 여객기 추락에 대한 원인과 책임 공방이 한창 오가면서 이란이 격추 사실을 부인하던 때였다. ‘우리는 실증 자료로 전모를 다 파악하고 있다’는 경고였을 수도 있고, ‘더 이상 확전을 원하지 않고, 빠져나갈 빌미도 주는 것이니 알아서 잘 대처하라’는 의미였을 수도 있다. 이 발언 이후 격추를 입증하는 자료들이 보도됐다. 결국 이란 대통령이 단교 국가인 캐나다 총리에게 사과 전화도 하면서 극한 대치가 풀려가고 있다.
앞서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기지에 미사일 공격을 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작전 개시 한 시간 전 이라크에 계획을 알린 것이다. 명분은 “이라크의 주권과 영토 보존을 매우 존중하기 때문”이었지만 실제는 미국을 향한 ‘사전 통보’였을 것이다. 미국이 군사 행동에 돌입하는 ‘레드라인’의 기준은 통상 자국민의 생명이 달렸을 때다. 어떻든 심야의 미사일 공격에도 미군 희생자는 한 명도 없었다. 공격 직후 “미군 80명이 숨졌다”는 이란 국영방송의 과장 보도를 보면 내부 결집용 반격이었던 셈이다.
‘누군가의 실수’ 언급이 이란 사태를 반전시켰다고 보면 말 한마디가 무섭다. 때로는 직설적이고 때로는 역설적인 한마디가 미사일보다 힘을 더 발휘할 때가 많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도 그런 경우가 보인다. 김정은을 향해 “생일을 축하한다”는 트럼프 발언도 예사롭지 않다. 국가 간 오가는 말에 힘이 실리려면 기본 국력에 정보력, 아니면 최소한 배짱과 결기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신정(神政)일치의 이란이나 말끝마다 주체사상인 북한이나 놀랍도록 닮았다. 전체주의 행태, 유일가치, 폐쇄적 수구주의, 핵무기 집착과 반미(反美)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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