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산업은 여러 이해관계자와 충돌하기 쉽다. 가장 쉬운 해결책은 일단 막는 것이다. 그러면 혁신이 꽃 피울 가능성은 사라진다. 이런 모순을 뛰어넘는 샌타모니카의 선택은 ‘스마트 규제’였다. 기업, 시민, 사용자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데이터를 축적했다.
킥보드 도입 후 반년간 100만 건 이상의 내연기관차 이용이 감소했다. 경제성과 환경 효율성이 입증되자 시의회는 세부 법안 정비에 나섰다. 주행 가능 도로, 속도, 주차 방식 등 구체적인 규제 방안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마련했다. 또 저소득 지역에서는 요금을 감면해 이동 혜택을 보장하는 방안을 업계와의 토론 끝에 마련했다. 잘 설계된 스마트 규제가 혁신을 견인하는 ‘미래형 인프라’로 탄생한 것이다.
지난 10일 막을 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에선 산업 간 벽을 허무는 발표가 줄을 이었다. 현대자동차가 우버와 손잡고 ‘항공 모빌리티’에 뛰어들었다. 소니는 무인주행자동차를 발표했다. 그런데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혁신이 일상이 된 시대의 풍경이었다.
이 새로운 조합으로 한국에서 사업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제대로 된 틀로 이 새로움을 받아낼 수 있을까. 혁신의 시대에는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페이스북이 최근 ‘규제 협력(co-regulation)’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혁신과 규제의 스마트한 접점이 넓어진다면 규제든 혁신이든 제도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독일이 좋은 예다. 독일은 2013년 미래형 연구개발 보조금 지원 등 혁신 산업을 위한 ‘인더스트리 4.0’ 전략을 발표했다. 변화에 민첩하게 부응하는 규제 환경 조성을 위해 규제 하나를 추가하면 하나를 없애는 ‘원 인, 원 아웃(One in, One out)’ 제도를 도입했다. 혁신보다 반 박자 늦을 수밖에 없는 규제의 한계를 이해하고, 혁신을 견인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다.
샌타모니카가 촉발한 스마트 규제와 사회적 토론은 미국에서 더 큰 부가가치로 확산되고 있다. 수십 배 더 큰 도시 로스앤젤레스가 관련 업체와 시민이 참여하는 유사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스마트 규제는 혁신이 일상이 되는 미래 사회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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