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는 ‘비례OO당’ 명칭으로 창당준비위원회 결성 신고를 마친 정당 세 곳에 정당법에 위반되지 않는 다른 명칭으로 정당 등록을 신청하라고 통보했다. 한국당은 선관위 결정에 따라 4·15 총선에서 비례 정당을 통해 전체 비례 의석(47석)의 과반까지 확보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지자 선관위를 상대로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은 “국민을 현혹시키려는 시도를 막았다”며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유사 명칭’ 기준 논란 계속될 듯
선관위는 이날 전체 회의가 끝난 뒤 ‘비례OO당’ 명칭 사용 불허 이유에 대해 “유권자가 투표 과정에서 정당을 오인·혼동해 잘못된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유사한 이름을 가진 기성 정당의 법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정당명에 ‘비례’라는 용어를 넣은 것 자체도 문제 삼았다.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나 정책을 내포한 단어가 아니어서 명칭에 넣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비례’라는 단어와의 결합으로 이미 등록된 정당과 구별된 새로운 명칭이 생긴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기성정당 명칭에 ‘비례’라는 단어만 붙여 등록할 경우 기성정당과 동일한 정당으로 인식돼 유권자 의도와 다르게 ‘후광효과’를 입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를 ‘유사 명칭’으로 봐야 하는지 기준이 불명확해 비례 정당 명칭을 둘러싼 정치권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관위 결정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지만, 유사 명칭 판단에 대한 기준이 뚜렷하지 않아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고 말했다.
현재 선관위에 등록된 34개 정당 중에는 우리공화당과 공화당, 민중당과 민중민주당, 기독당과 기독자유당 등 당명이 비슷한 정당이 여럿 있다. 선관위는 지난해 대한애국당(현 우리공화당)이 당명을 ‘신(新)공화당’으로 바꾸려 하자 기존 공화당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며 불허했다가 우리공화당으로 다시 변경 신청을 하자 허가해 주기도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선관위 논리대로라면 새누리당(한국당 전신)과 통합민주당(민주당 전신) 등도 기성정당의 후광효과를 누리는 셈인데, 당명 사용을 허가해 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선관위는 이에 대해 “정당명의 주요 단어가 겹치는지 여부뿐 아니라 유권자의 투표권 행사 과정, 정당·후보자 등의 선거운동, 언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당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례정당 당명 고심하는 한국당
선관위 결정에 한국당은 “정당 설립의 자유와 의사 표시의 자유를 무시한 반(反)민주주의 폭거”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당은 총선에서 지역구 100여 석에 비례 정당을 통한 비례 30여 석을 더해 원내 1당으로 올라서겠다는 계획이었다. 민주당 에서도 ‘한국당의 비례 정당 창당 땐 총선 승리가 어렵다’는 예측이 나왔다. 그러나 한국당과 비례 정당의 당명을 ‘통일’시키는 게 불가능해지면서 비례대표 선거에서 한국당 지지자들의 몰표를 비례 정당에 몰아주려던 계획도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완전히 다른 당명을 사용하면 한국당의 ‘자매 정당’임을 유권자가 인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사실상 선관위에 ‘비례자유한국당을 불허하라’는 지침을 줬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조해주 선관위 상임위원이 선관위 회의 하루 전날 불허를 종용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조 위원은 지난 대선 때 문 대통령 캠프 특보를 맡았고, 작년 1월 한국당의 반대 속에 선관위 상임위원에 임명됐다.
한국당은 일단 당명을 바꿔 정당 등록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당 일각에선 추진 중인 ‘중도·보수 통합 신당’으로 지역구 선거에 나서고, 비례대표 선거는 기존 한국당 이름으로 치르자는 제안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비례OO당’은 명백하게 민심을 왜곡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선관위 결정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밝혔다. 정의당도 “명칭의 유사성과 관계없이 한국당이 창당하려는 위성정당은 ‘가짜 정당’이므로 선관위는 창당 등록을 불허해야 한다”고 했다.
하헌형/김소현 기자 hh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