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정석》은 북한의 화폐 개혁 이야기로 시작한다. 북한의 디노미네이션 조치를 ‘계산 단위’ ‘가치 저장 수단’ ‘교환 수단’이라는 돈의 필수 기능을 무시한 사례로 든다. 책을 쓴 찰스 윌런 미국 다트머스대 록펠러센터 공공정책 교수는 ‘벌거벗은(Naked)’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다. 《벌거벗은 경제학》과 《벌거벗은 통계학》은 경제 분야를 이해하기 쉽고 재밌게 풀어내 큰 인기를 끌었다.
저자는 돈의 작동 원리와 그 움직임의 파급효과, 돈의 유용성과 운용 방법 등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엮어낸다. ‘돈의 본질은 설명하기 까다롭다’는 저자의 토로와 달리 책은 신선한 표현들을 곁들여 직관적으로 접근한다.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은 ‘물가 상승’보다는 ‘구매력 하락’으로 이해하면 쉽다. 돈을 찍어내 이미 유통되고 있는 돈의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사실상 그 돈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고 결국 현금을 가진 사람의 구매력을 ‘훔쳐가는 것’이란 설명이다. 인플레이션은 정치적인 현상이지만 심리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대부분은 연봉과 물가가 함께 올라도 연봉이 인상되길 바란다. 이런 ‘화폐 착각’과 명목화폐가 지닌 근본적인 취약성은 현대 금융 시스템의 구멍이 된다.
인플레이션보다 더 나쁜 것은 디플레이션이다. 수입이 줄어드는 데다 집과 같은 자산의 가치까지 떨어지기 때문이다. 20년 이상 디플레이션을 겪은 일본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낸 이유다. 저자는 “아베노믹스에 대한 판단은 시간에 맡겨야 할 것”이라면서도 “결과에 관계없이 일본의 사례에서 배울 점은 많다”고 서술한다. 다른 부자 나라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경제가 후퇴할 때보다는 성장하고 있을 때 구조 개혁을 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훨씬 쉬운 일”이라는 조언도 와닿는다.
오늘날 금융시스템의 토대가 된 신용거래와 함께 금융위기도 돌아본다. 금융회사들은 신용을 창출해 돈의 공급을 확대시킨다. 덕분에 경제적인 힘이 커지지만 불안정성도 함께 커진다. 저자는 “금융의 역사는 금융 위기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문장으로 정리한다.
쉽게 썼지만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니다. 돈의 역할과 통화의 의미에 대한 탐색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역사·정치·문화적 맥락에서 흐름을 읽는다. 미국과 중국 통화 전쟁의 향방을 예측하고 중앙은행의 바람직한 역할도 고민한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돈 문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설득하는 데 성공했기를 바란다”고 썼다. 돈이 중요하다는 것은 ‘돈을 많이 갖는 게 좋다’는 게 아니다. 그는 그 의미를 “우리 주머니에 20달러짜리 지폐가 들어올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이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다른 모든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얘기”라고 설명한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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