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한 삼성그룹이 투명 경영을 위해 출범한 준법경영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을 살피겠다는 뜻을 전하면서 양형에 반영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17일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심리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뇌물공여 등에 대한 파기환송심 4차 공판이 진행됐다. 특검과 이 부회장 측은 CJ그룹 회장의 증인 철회,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조작 사건 자료 증거채택, 양형심리와 관련된 준법감시위원회 평가를 두고 팽팽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이날 재판에는 본래 손 회장이 증인으로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손 회장은 이 부회장의 사촌인 이재현 CJ 회장의 외삼촌으로 지난 2018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1심에 출석해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뜻이라며 이미경 CJ 부회장을 퇴진시키라는 압박을 받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인물이다.
지난해 11월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아세안 CEO 써밋' 행사장에서도 손 회장은 "재판부에서 오라고 하면 국민된 도리로서 가겠다"며 재판 참석 의사를 밝혔지만, 14일 일본 출장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이 부회장 대변인은 "손 회장이 경제계 원로라서 대통령과 기업의 관계를 증언할 최적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으나, 손 회장의 불출석 사유서를 보면 대통령의 재정지원 요구에 대해 증언하시는 데 상당히 부담을 가지신 듯하다"며 "박 전 대통령 1심 사건에서 증언한 녹취록을 제출하고, 증인신청은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특검은 "재판장께서 다시 한번 소환해주시면 특검 측도 출석을 독려하겠다"고 밝혔지만, 재판부는 손 회장이 양형 증인인 점을 감안해 변호인 측 의견을 받아들여 증인채택 결정을 취소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조작 사건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자료에 대해서도 양측이 엇갈렸다. 특검은 "변호인들은 승계작업이 마치 통상승계와 동일하거나 기업의 일반회계와 유사하다고 답변했기 때문에 승계작업을 입증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관련 자료를 증거 자료로 제출했지만, 이 부회장 측에서는 "합병 비율과 분식회계 수사 관련 자료는 이 재판과 관련성이 없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대법원이 승계작업을 인정한 이상 승계작업을 위한 개별 현안에 대한 추가 증거조사는 필요없다"고 정리했다.
삼성이 지난 9일 출범한 준법감시위원회를 놓고도 상반된 입장이 드러났다.
지난 재판에서 재판부는 "향후 정치 권력자로부터 똑같은 요구를 받으면 뇌물 공여를 할 것인지, 기업이 응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을 다음 기일 전에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삼성은 준법감시위원회 출범을 밝혔다. 위원장에는 진보 성향 김지형 전 대법관이 내정됐다.
이 부회장 측은 그룹 총수나 임원들에 대한 감시·감독이 적절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준법감시위원회에 독립적 권한을 부여하는 등 준법감시위원회가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양형에 유리하게 참작해 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에 특검은 "재벌체제 혁신과 준법위 도입이 양형사유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심사해 달라"며 "일각에서는 준법위 도입에 따른 일련의 진행이 '이재용 봐주기' 명분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양형심리든 회복적 사법이든 공정하고 투명하게 재판이 진행되길 바란다"는 의견을 전했다.
재판부는 준법감시위의 실효적 운영을 점검할 필요성이 있다며 법원, 특검, 이 부회장 측이 한 명씩 추천해 3인으로 구성된 전문심리위원을 구성해 운영 실태를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에게 삼성 경영권 승계 및 지배구조 개편 등을 도와달라는 청탁을 하고, 그 대가로 최서원의 딸 정유라의 승마훈련 비용,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미르·K스포츠재단 등 지원 명목으로 총 298억2535만원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구속됐지만, 2심에서 삼성의 승마지원 용역대금만 유죄 판단을 받아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지난해 2월 석방됐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삼성이 최서원의 딸 정유라에게 말 세마리(약 34억 원)의 실질 소유주가 최서원이라고 보고 이 부회장의 사건을 2심 재판부로 파기환송했다.
또한 삼성이 영재센터에 제공한 후원금 16억 원에 대해서도 이 부회장 승계와 관련한 제3자 뇌물로 판단, 총 뇌물 액수가 원심 36억 원이 아닌 86억 원으로 판단해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범죄수익은닉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다시 심리하라고 주문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액이 50억원을 넘으면 무기징역이나 징역 5년 이상을 선고하게 돼 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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