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2019년 약 30년간 일본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에 불과했다. 1990년대 초 거품경제가 꺼졌을 때 일본은 정부지출의 대부분을 국채 발행으로 지탱했다. 이때의 경제정책은 ‘국가채무 누증과 경기침체’라는 늪에 빠져들게 했고 2중의 정책 오류를 범했다.
하나는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낭비적 재정지출 증가’라는 오류였다. 일본은 대규모 국채 발행으로 재정자금을 조달했지만, 정보기술(IT)이나 금융산업 혁신이란 구조 변화에는 대응하지 못했다. 1970년대 공공투자 증대를 통해 석유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는 일본은 거품경제가 붕괴하자 이용도가 낮은 도로, 회의장, 전시장, 휴양시설 건설 등에 재정자금을 쏟아부었다. 낭비성이 강한 공공지출은 불필요한 유지비용과 철거비용을 발생시켰고 재정운용의 경직성도 심화시켰다.
다른 하나는 인구구조 변화 및 저성장 국면을 감안하지 못한 ‘사회보장·복지 제도의 설계 오류’였다. ‘복지원년’이라 명명한 1973년 일본은 현행 사회보장·복지 제도의 근간을 마련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한동안 높은 성장률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제하에 사회보장·복지 제도를 설계했으나 공교롭게도 고도 경제 성장은 종료됐다. 마련된 제도에 따라 부담 수준을 훨씬 웃도는 급부를 노년층에 제공해야 했다. 결국 사회보장 재원 마련을 위해 다량의 적자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영합 성향의 정치가와 정책담당자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곤 하지만 빈말로 끝나기 십상이다. 일본에서도 재정운용 목표는 지켜지지 않았고 국가부채는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거품경제 붕괴 후 경기부양 정책을 내놓던 일본 정부는 2000년에 ‘기초적 재정수지’(PB: primary balance) 흑자 달성을 주창했으나 실패했고, 2010년에도 PB 흑자 전환을 약속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아베 신조 정권도 2020년까지 PB 흑자를 내세웠다가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자 2025년에 달성하겠다며 후퇴했다. 지난 17일 발표한 내각부의 ‘중장기 경제재정에 관한 시산(試算)’에서는 2025년에도 그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거품경제 붕괴 이후 재정 건전화 달성 목표는 한 번도 지켜지지 못한 허위의 연속이었다. 종국엔 ‘30년의 성장 상실기’를 안겨줬다.
한국의 현 경제·재정 운용을 보면 거품경제 붕괴 이후의 일본을 떠올리게 한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돼 사회보장 및 복지 지출이 크게 늘고, 작년 경제성장률은 자칫 1%대로 내려앉을 위기다. 정부는 경기 부양을 하겠다며 재정적자를 증대시키고 있으나 성장률은 높아지지 않고 국가부채만 늘고 있다. ‘보편적 복지’가 강조되는 한국에서 ‘비효율적인 재정적자 누적’이 경제성장률 저하, 세대 간 불평등, 그리고 장래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 상실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한국판 ‘성장 상실기’의 서곡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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