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민호 감독(사진)은 22일 개봉하는 정치드라마 ‘남산의 부장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총 제작비 208억원을 들인 이 영화는 청소년관람불가 흥행 기록(915만 명)을 세운 ‘내부자들’과 송강호 주연의 ‘마약왕’(186만 명)에 이은 우 감독의 욕망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20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우 감독을 만났다.
“‘내부자들’이 뜨거운 영화라면 ‘남산의 부장들’은 차가운 작품이죠. 실제 사건이어서 원작의 차분하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자극적으로 그리고 싶은 욕구를 참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김충식 작가의 논픽션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이 작품은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사건을 절제된 톤과 연기로 담아냈다. 극중 김규평 중앙정보부장(이병헌 분)이 곽상천 경호실장(이희준 분)과 감정싸움을 하고 총격전까지 벌이지만 대사와 행동은 절제돼 있다.
영화는 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권력 구조가 조직원 간 감정싸움으로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강경파인 곽상천은 매우 단순한 성격이고, 김규평은 복합적인 인물이었어요. 강압적으로 대응하려는 곽상천과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김규평은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어요.”
우 감독은 영화에서 박정희의 용인술도 조명한다. “18년간 권력을 유지한 비결은 뛰어난 용인술이었습니다. 2인자를 키우지 않았던 그는 한 세력이 커지면 잘라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 저울의 균형을 상실했습니다.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쓴소리는 내쳤어요. 권력이 막바지에 왔음을 직감했던 개인적 공포와 두려움 때문이었을 겁니다.”
우 감독은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했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창작이라고 강조했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극중 박용각)이 워싱턴DC에서 유신정권의 실체를 폭로한 ‘코리아게이트’ 사건은 10·26보다 2년 전에 일어났지만 영화에서는 40일 전에 발생한다. 김재규와 김형욱은 선후배 사이였지만 영화에서는 친구 사이로 바뀌었다. 우 감독은 “영화적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간 차를 좁혔고, 김규평과 박용각(곽도원 분)은 쓰고 버려지는 2인자 신세의 동일인처럼 느껴지기를 바랐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첩보물 못지않은 스릴을 느끼게 한다. 우 감독은 배우들의 힘으로 공을 돌렸다. “이병헌은 안으로 꾹꾹 감정을 눌렀다가 막판에 쏟아냅니다. 감정을 보여줘야 했기에 얼굴 가까이에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정말 잘 버텨줬어요. 자신의 감정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섬세한 표현을 해냈어요. 정말 대단한 배우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역을 해낸 이성민은 배역과의 싱크로율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곽상천 역 이희준은 체중을 25㎏ 불려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성민의 외양은 특수 분장으로 완성했습니다. 무엇보다 유신 말기 독재자의 두려움을 잘 연기했어요. 이희준은 살을 찌우고 성대도 굵게 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왔습니다. ‘마약왕’에서 그의 강력한 에너지를 보고 캐스팅했죠.”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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