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 임기 제한·국민연금 경영간섭…정부 '기업 옥죄기 3法' 시행령 강행

입력 2020-01-21 17:59   수정 2020-01-22 01:24

정부가 기업 사외이사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고 국민연금이 임원의 해임을 청구해도 이를 경영간섭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상법·자본시장법·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기업들이 “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수정이나 보완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관계부처 사이에서 “시행령 적용이 1년 유예될 수 있다”는 기류가 감지됐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올초 기자회견에서 “시행령 개정을 통해 대기업의 건전한 경영을 유도할 수 있는 기반을 곧 마련할 것”이라고 말하며 없던 일이 됐다.

국민연금 경영간섭 심해질 듯

이날 국무회의를 통과한 상법과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은 이달 안에 공포 후 즉시 시행되고, 국민연금법 시행령은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된다.

상법 시행령은 한 상장회사에서 6년을 초과해 사외이사로 재직했거나 계열사까지 합쳐 9년을 초과해 재직한 사람은 같은 회사의 사외이사가 될 수 없도록 했다. 특정 회사 계열사에서 퇴직한 지 3년이 되지 않은 자는 해당 회사 사외이사가 될 수 없다는 내용도 담겼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기금에 ‘5%룰’을 완화해 주는 게 골자다. ‘상장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한 주주는 지분을 1% 이상 사고팔 때 이를 5일 내 공시해야 한다’는 게 5%룰이다. 다만 공적 연기금은 경영참여가 아니라 투자 목적으로 주식을 매매하면 5%룰 적용을 면제한다는 조항이 있다.

정부는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 변경 추진 △배당과 관련한 주주활동 △회사 임원의 위법행위에 대한 상법상 권한(해임 청구권 등) 행사는 경영참여가 아니라고 규정했다. 공적연기금은 이 같은 주주활동을 해도 5%룰이 적용되지 않아 주식 보유현황 등을 월별로 약식 보고만 하면 된다. 국민연금이 공시를 자주 내면 투자 패턴이 알려질 수 있는데, 5%룰이 완화되면 이 같은 부담을 덜 수 있다.

국민연금법 시행령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에 투자정책전문위원회,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험관리·성과·보상 전문위원회를 설치하고 각각 전문위원 9명을 둔다는 내용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기금운용위가 비대해지면서 ‘정부가 국민연금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단체들 부작용 우려

경제단체들은 이날 정부 발표 후 “기업들의 요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사외이사의 임기 제한은 인력 운용의 유연성과 이사회의 전문성을 훼손한다”고 했다. 한국경제신문이 12월 결산 상장사(금융회사 제외) 2003곳의 사외이사(총 3973명) 임기를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의뢰해 전수 조사한 결과, 개정안에 따라 6년 이상 재직했거나 재선임되더라도 임기 중 자격이 상실돼 반드시 교체해야 하는 사외이사는 상장사 566곳의 718명이었다. 전체 상장사 사외이사의 약 5분의 1(18.0%)에 해당한다.

5%룰 완화는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본격적으로 개입할 길을 터줬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는 KT 포스코 네이버 등 313곳에 달한다. 정우용 상장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5%룰 도입 취지는 주요 주주의 지분 변화를 신속히 알려 시장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며 “5%룰 완화로 기업들은 지분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려워졌고 정보 비대칭이 심해져 다수의 소액주주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훈/하수정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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