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 인사명단에 정몽원 회장이?…최고인사책임자 직접 맡았다

입력 2020-01-22 17:14   수정 2020-01-23 01:12

“인재는 데리고 오는 게 아니라 모셔 와야 하는데 이걸 좀 늦게 깨달았다. 내 월급보다 더 주고서라도 모셔 오려고 한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사진)이 2018년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당시 정 회장은 “경영은 결국 사람 싸움”이라며 “첫째도 인재, 둘째도 인재, 셋째도 인재”라고 강조했다.

인재 확보에 대한 절박함은 22일 발표한 한라그룹 인사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한라그룹은 이날 그룹 최고인사책임자(CHRO)라는 자리를 신설하고 정 회장을 CHRO로 선임했다. 재계 순위 40위권인 그룹 총수가 다른 직책을 겸임하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인사 책임자를 맡는 것은 국내 대기업 중 처음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룹 총수가 인사 업무 총괄

정 회장은 앞으로 그룹 인재 양성의 산실인 한라인재개발원 원장을 겸임하며 인사 및 교육 업무를 총괄한다.

한라그룹은 “정 회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사람이 핵심 자본’이라는 경영철학을 분명히 밝히고 싶어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회장이 인사혁신을 직접 지휘해 일류 기업으로 가는 토양을 마련하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덧붙였다.

이전에도 정 회장은 인재의 중요성을 수차례 역설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한라그룹 창립 57주년 기념식에서 “40년간 한라에 몸담아 오면서 오랜 체험의 핵심은 결국 사람이라는 점을 깨달았다”며 “사람과 그 사람이 가진 의지·열정에 대해 지금보다 더 절실히 고민한 적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정 회장은 “사람은 ‘자원’이 아니라 ‘핵심 자본’에 해당한다”며 “사람의 가치를 정확히 판단하고 서로 협력하는 문화를 만들어 낼 때 변화는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같은 변화를 위해 ‘인사 혁신 프로젝트’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그룹 안팎에선 정 회장이 이런 본인의 의지를 사내에 확산시켜 인사 혁신 프로젝트를 스스로 완성하기 위해 CHRO를 직접 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회장은 한경 인터뷰에서 “나는 공장에 있든, 연구소에 가든 항상 절박하다”며 “직원들도 이런 마음이었으면 한다”고 했다.

창사 이래 첫 40대 대표 선임

정 회장의 혁신 의지는 인사 부문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그는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한 혁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지난 7~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을 참관했다. 정 회장이 CES를 찾은 건 올해가 처음이다. 그는 현대자동차는 물론 삼성전자, LG전자 등 글로벌 전자업체 전시관을 꼼꼼히 살펴봤다.

정 회장은 “지금까지는 모터쇼만 다녔는데 지난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가보고 ‘더 이상 모터쇼는 볼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며 “자동차 부품 회사들도 정보기술(IT) 업체처럼 변해야 한다는 생각에 CES를 찾았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CES 2020에서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모빌리티(이동수단) 기업임을 선언했듯이 한라그룹도 자동차 부품 기업에서 종합 부품 그룹으로 변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는 게 정 회장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정 회장을 잘 아는 지인은 “정 회장이 회사 조직이나 인사 분야를 미래에 맞춰 바꾸겠다는 의지가 크다”고 전했다.

이런 혁신 의지는 이번 인사에서도 반영됐다. 한라그룹은 창립 이래 처음으로 40대 인사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다. 상무보에서 전무로 승진해 전장 업체인 만도브로제 대표이사를 맡게 된 이정석 전무(49)가 주인공이다. 한라그룹은 또 김기영 책임연구원(41)을 그룹 내 첫 번째 연구소 출신 여성 임원으로 발탁했다. 그룹 관계자는 “그룹을 젊고 유연한 조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정 회장의 의지가 이번 인사에 담겨 있다”며 “내부에서도 40대 CEO 선임은 파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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