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돈보다 4~5배 홍보 효과"…女골프 마케팅에 꽂힌 기업들

입력 2020-01-23 14:47   수정 2020-01-24 00:17


‘귀족 스포츠’ ‘특권층의 전유물’.

한때 골프를 가리키던 수식어다. 11년 전 “국내 골프인구는 2012년 정점을 찍고 내리막 길을 걸을 것”이라는 한 연구소의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국민소득이 올라가고 스크린골프 등으로 진입 문턱이 낮아지면서 골프산업에 전성기가 찾아왔다. 한국골프지표에 따르면 2012년 470만 명이던 골프 경험 인구는 2017년 700만 명을 넘어섰다. ‘골프 르네상스’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최근 수년간 프로골프투어 스폰서의 업종도 눈에 띄게 다양해졌다. 대기업과 금융권 중심으로 돌아가던 후원 시장에 중견기업이 가세하면서다. 전문가들은 이제 프로골프대회가 단순한 ‘접대성 행사’를 벗어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파급력을 지녔다고 입을 모은다. 한 글로벌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업계에선 후원사가 투자금액 대비 4~5배의 홍보 효과를 누리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성희 한국외국어대 글로벌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한때 부유층이 즐기던 골프가 대중화하면서 데모그래픽(소비자를 인구학적으로 세분화하는 것)이 넓어졌다”며 “자연스레 프로골프투어에 참여하는 기업의 업종도 확장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리미엄+대중 마케팅…일석이조

이 같은 현상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 참여하는 후원사 업종 ‘변천사’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2012년 총상금 100억원을 돌파하며 급성장한 KLPGA투어에 참여한 후원 기업의 업종은 5개(한국표준산업분류 기준)에서 2019년 8개로 늘어났다. 2014년 투어에 들어온 치킨 프랜차이즈 교촌 등이 ‘제조업’ 등으로 분류돼 실제로는 훨씬 더 다양한 업종이 후원사로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 2000년대까지 프로골프대회 후원 수요가 컸던 금융·서비스 기업이 KLPGA 정규투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44%(전체 25개사 중 12개사)에서 지난해 29%(34개사 중 10개사)로 낮아졌다.

한 대행사 관계자는 “10년 전만 해도 프로골프대회는 VIP 고객 등 특정 층과 교류하는 ‘프리미엄 마케팅’의 매개체 역할을 했다”며 “(골프가 대중화하면서)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중 마케팅’도 된다고 판단한 기업이 늘면서 대회 개최 문의가 매년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건설업종의 적극적인 참여가 두드러진다. 2012년 한 곳도 참여하지 않은 건설업 기업의 경우 후원사가 2018년 4곳으로 늘어났다. 올해 골프단을 운영하는 건설업 관련 기업만 10여 개다. 호반건설 요진건설 등 ‘초창기 멤버’가 골프 후원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경쟁심리가 심화돼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정해진 일정에 ‘자리 싸움’ 치열

후원사로 참여하고 싶어 하는 기업이 급증하면서 대회 개최 일정을 놓고 자리 싸움이 치열하다. 날씨가 좋은 4~6월, 10~11월이 성수기로 꼽힌다. 대회 개최 시기를 놓고 기업 간에 치열한 기싸움이 펼쳐지기도 한다. 메이저대회급 총상금 규모를 투자하면서 성수기에 대회를 열기 원하는 기업과 기존 후원사 사이에서 KLPGA가 중재해야 하는 일이 빈번하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영업을 많이 해야 하는 금융 및 투자증권사는 골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기 때문에 꾸준히 골프대회 후원을 해왔지만 다른 업종 기업의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새 대회를 열고 싶어도 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그러면서 “대회를 열기 어려워지면서 선수 후원을 늘리는 쪽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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