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일시 중단된 적격대출이 새해부터 재개됐다. 하지만 ‘문턱’이 높아져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서민형 안심전환대출 재원을 마련하느라 적격대출에 배정된 재원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게 은행권 얘기다. 일부 은행에서는 아예 취급하지 않기로 하는 등 사실상 ‘개점 휴업’에 들어갔다. 서민을 위한다는 명목의 선심성 대책이 다른 대출 수요자들의 선택지를 줄이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개는 됐지만 ‘그림의 떡’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금공은 지난 7일 홈페이지를 통해 신한 우리 농협 기업 씨티 제주 경남 SC제일은행 등에서 적격대출을 재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금리는 고정형 상품 기준으로 연 2.70~2.91%로 정해졌다. 주금공이 취급하는 적격대출은 대표적인 저금리 정책 금융 상품이다. 소득 제한이 없고 집값 기준도 9억원 이하로 기준이 덜 까다롭다. 은행은 수수료를 받고 판매 창구 역할만 한다. 주금공이 대출을 기초로 주택저당증권(MBS)을 발행해 유동화하고 이를 떠안는 구조다.
대출이 재개됐지만 문은 확 좁아졌다는 게 은행권 설명이다. 지난해 초 대비 각 은행에 고지된 대출 할당량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대출을 재개했다고 발표한 은행 중 상당수는 영업점에서 대출을 내주지 않고 있다. 일부 은행은 아예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초에 비해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재원이 할당됐다”며 “대출을 재개하더라도 너무 빨리 소진될 물량이어서 소비자 혼란만 키울 것 같아 아예 대출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안심전환대출 ‘후폭풍’?
적격대출을 받기 어렵게 된 것은 안심전환대출 영향이 크다는 게 은행권 설명이다. 지난해 9월 출시된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은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최저 연 1%대 고정금리 상품으로 바꿔주는 정책 상품이다. 총 20조원 규모로 계획됐다.
이에 따라 주금공은 올해 2월까지 MBS 20조원어치를 차례로 발행할 계획이다. MBS 규모를 무제한 늘릴 수 없는 만큼 적격대출에 할당된 재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주금공의 MBS 발행액이 28조1000억원으로 전년보다 3조3000억원(13.3%) 증가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선심성 정책으로 인해 다른 정책금융 상품의 수요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주택 매매 예정자는 “기존에 주택을 구매한 사람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 때문에 정작 저리 대출이 필요한 서민은 대출받기가 어려워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주금공은 정책적으로 적격대출 규모를 축소하고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2018년부터 가계 대출 규모를 줄이기 위해 매년 1조원씩 적격대출을 줄이기로 한 계획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주금공 관계자는 “안심전환대출과 상관없이 적격대출을 공급하고 있으며 하반기에는 재원을 더 많이 분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커버드본드를 발행하는 은행은 더 많은 대출 재원을 할당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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