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이달 20일자로 중부·인천·대구지방국세청장 등 고위급 18명의 인사 발령을 냈습니다. 내부에선 안도의 한숨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지방청장을 포함한 주요 보직의 공석(空席) 사태가 한 달 가까이 이어져왔기 때문이지요.
국세청 관계자는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내부 관행에 따라 선배들이 작년 말 명예퇴직했는데 후임 선임 작업이 많이 늦어졌다”며 “지방청장 등 고위급 인사가 이처럼 늦어진 건 국세청 역사상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국세청 인사만 늦어진 게 아닙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정보원 경찰 등 다른 ‘권력기관’의 간부들 인사도 줄줄이 지연됐습니다. 일부 기관에선 작년 11월 고위공직자 교체대상 명단을 청와대에 제출했으나 최종 ‘승인’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작년 말부터 인사 발령이 나기를 기다려온 승진 대상자들은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고위 간부 인사가 이렇게 늦어지는 건 매우 이례적이기 때문이죠.
정보기관인 국정원 인사의 경우 더 복잡합니다. 국정원엔 직급별 정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죠. 일정 기간 내 승진하지 못하면 규정에 따라 자동 퇴직해야 합니다. 국정원의 일부 고위직 인사 대상자는 승진 발령이 나지 않아 정년 퇴임을 맞는 ‘해프닝’이 발생했다는 후문입니다.
문제가 무엇일까요. 정부 내에선 고위직 공무원들의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란 얘기가 돌고 있습니다. 국세청 국정원 등 권력기관 간부 대상자에 대해선 청와대에서 비위 등을 철저하게 검증하는데, 민정수석실이 ‘자기 일’ 때문에 여유가 없어졌다는 것이지요.
민정수석실은 작년 8월부터 ‘조국 사태’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작년 12월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 무마 의혹으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지요. 검찰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 하명 수사’와 관련해서도 민정수석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고위직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민정수식실이 제 코가 석자인 상황에서 누굴 검증하겠느냐”며 “결과적으로 국정 업무에 공백이 발생하는 건 작지 않은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일각에선 청와대가 과거와 달리 인사권을 더 많이 행사하려는 과정에서 고위직 승진·전보가 늦어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지금까지는 각 부처가 특정 보직에 단수 후보를 추천하면 민정수석실이 부적격 여부만 따져본 뒤 승인을 내주는 방식이었지만 작년부터 일부 보직에 한해 복수 추천을 받았다는 겁니다. 예년에 비해 인사 검증 과정이 훨씬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 공무원은 “매년 6월과 12월에 고위직 인사를 해왔는데 올해는 이런 관행이 틀어졌다”고 했습니다. 12월 인사가 늦어져 1~2월에 발령을 낸다면, 바로 이어지는 6월 인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고위 공무원들이 인사 대상자로 분류된 뒤 청와대 승인을 얻지 못해 계속 대기해야 한다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게 인지상정일 겁니다. ‘대(對)국민 서비스’에도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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