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탈(脫)원전' 넘어 '원전 파괴'로 치닫는 조치 멈춰야

입력 2020-01-28 18:28   수정 2020-01-29 00:15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 악영향이 어디까지 미칠지 모를 지경이다. 월성원전의 핵폐기물 시설을 증설하는 안건이 4년 만에 원자력안전위원회를 통과했지만, ‘공론화’라는 또 다른 벽을 만나 공사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작년 말 기준 맥스터를 비롯한 사용후핵연료 보관시설의 포화율은 94.2%에 달해 최악에는 월성 2~4호기가 내년 말 멈춰 설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월성 2~4호기를 중단 없이 운전하려면 최소한 올 4월까지는 맥스터 착공에 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정정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장은 “공론화를 통한 핵폐기물 중장기 정책 수립과 지역 의견 수렴이라는 절차상 올 4월까지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며 “월성 2~4호기 중단 문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판단할 몫”이라고 말했다. 산업부는 한술 더 떠 “공론화가 국정과제로 결정된 만큼 의견 수렴 전에는 맥스터 증설 착공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주무부처와 위원회가 서로에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문재인 정부가 기존의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백지화했기 때문이다. 경주 주민들은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고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정부는 다시 여론을 수렴한다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무엇을 공론화할지조차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며 참여 거부를 선언했다.

정부는 탈원전을 ‘에너지 전환’이란 말로 바꾸고 있지만, 그 폐해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다. 원전산업 생태계가 급속히 무너져내리는가 하면, 원전 수출은 동력을 잃고 말았다. 한수원이 조기 폐쇄를 결정한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 조작의혹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맥스터 포화로 월성 2~4호기까지 일제히 멈춰서면 탈원전을 넘어 ‘원전 파괴’로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방치한다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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